고인은 일본의 건국 신화가 한국 단군신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역사는 사실을 정확히 기술해야 하고 이념에 바탕을 둬선 안 된다”며 일본 교과서에 독도 영유권 주장을 싣는 것도 반대했다. 그는 또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을 지칭하던 ‘귀화인’이란 표현이 ‘일본 중심적’이라고 지적하고, ‘도래(渡來)인’이란 표현을 정착시키는데 기여했다.
우에다 마사아키 교토대 명예교수
우에다 교수는 에도(江戶)시대 조선통신사와 일본 민중들이 함께 어울리며 우호관계를 쌓은 데 대해서도 주목했다. 조선통신사 연구를 통해 일본의 편협한 내셔널리즘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1950년 교토대를 졸업한 뒤 71년 교토대 교양부 교수가 됐고 91~97년엔 오사카여자대 학장을 지냈다. 88년 재일교포 1세 정조문 씨가 일본 내 한국문화재를 수집해 교토에 세운 고려미술관 관장도 맡았다.
『고대 일본과 조선』(86년), 『고대 도교와 조선문화』(89년)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으며 2009년 한국 정부로부터 수교훈장 숭례장을 받았다.
도쿄=이정헌 특파원 jhleehop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