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잣집 시집가 다 누리지 않았나” 막말한 판사

중앙일보

입력 2016.01.21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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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의 A부장판사는 지난해 재판 진행 도중 양쪽 대리인에게 “항소 이유를 각각 1분씩 말하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한쪽 대리인이 1분을 넘기자 그는 “다음 사건을 진행하겠다”고 하고는 재판을 중단했다. 그런 뒤 변호인들을 장시간 법정에서 대기하게 했다.

서울변호사회 ‘2015 법관 평가’
허익수·정형식 등 8명은 우수

A부장판사는 또 재판 당사자들이 반대하는데도 무리하게 조정을 유도하거나 당사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자료를 내면서 증거로 채택해 달라고 신청하자 이를 철회토록 한 뒤 패소 판결을 내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

A부장판사는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김한규)가 20일 발표한 ‘2015년 법관평가’ 결과에서 최하위 법관으로 기록됐다. 100점 만점 중 22.8점을 받았다.

 판사들의 막말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이혼 사건의 당사자에게 “부잣집에 시집가서 누릴 것 다 누리고 살지 않았느냐. 도대체 얼마를 더 원하느냐”고 폭언을 한 판사, 음주운전 사건에서 검사가 집행유예를 구형하자 “수사검사가 (피고인과) 친구냐. 왜 이렇게 봐줘”라고 되물은 판사도 있었다.

 변호사나 당사자의 변론권, 진술권을 침해한 사례도 제시됐다. 피고가 다소 긴 서면을 제출하자 “다음부터는 5페이지를 넘는 부분에 대해서는 진술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말하거나 “전에 유사한 사건을 해봐서 더 볼 것이 없다”고 한 경우다.

하지만 100점 만점에서 50점 이하를 받은 하위 법관의 비율은 3.24%로 지난해(4.58%)보다 줄었다.

 허익수 판사(서울가정법원), 정형식 부장판사(서울고등법원), 여운국 판사(서울고등법원), 임선지 부장판사(광주지법 목포지원) 등 8명은 100점 만점에 95점 이상을 받아 우수 법관으로 꼽혔다. 이 중 허 판사는 변호사 7명에게서 모두 100점 만점의 평가를 받았다.

장시간 조정 사건을 진행하면서도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경청’과 ‘배려’의 태도가 높게 평가된 결과다. 허 판사는 “당사자들의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 진행되는 가사사건의 특성을 고려해 충분히 들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우수 사례엔 항소를 기각하면서 그 이유를 80여 명의 판결문에 기재한 판사, 결심 전에 “본 재판부가 주의 깊게 보았으면 하는 것을 알려 달라”고 친절하게 말한 판사가 포함됐다.

 이번 평가는 서울변회 회원 변호사 1만2758명 중 1452명(11.3%)이 제출한 8343건의 평가서를 토대로 했다. 1782명의 법관이 대상이 됐다. 이광수 서울지방변호사회 법제이사는 “이번 법관평가 결과는 법관 인사에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장혁·정혁준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