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의 ‘사랑의 온도탑’은 아직 눈금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매년 요맘때 탑의 수은주가 빨리 올라가지 않는다는 게 사회적 이슈가 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난 11월 말에 세워놓은 이 탑의 수은주는 모금 목표액(3430억원)에서 1%가 찰 때마다 1도가 오른다. 22일 오후 현재 탑의 온도는 46도다. 지난해 같은 때에 비해서는 약간 높은 온도지만 모금회의 기대보다 상승 속도가 느리다고 한다. 이 조형물은 왜 시내 복판에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많은 이가 참여했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일까, 아니면 참여를 안 하고 있다며 경고하려는 것일까.
대학교수들이 뽑는 한 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올해는 ‘세상이 어지럽고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다’는 뜻의 ‘혼용무도’(昏庸無道)가 제시됐다. 지난해에는 ‘지록위마’(指鹿爲馬·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하는 것처럼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속임)였다. 위정자의 실덕을 꼬집는 독설을 드러내는 게 연례행사가 됐다. 교수단체에서 운영하는 신문이 올해는 1만4000여 명의 교수에게 설문조사를 시도했고 886명의 응답을 받아 이를 뽑았다. 그래도 전체 교수들의 뜻이 담긴 것으로 얘기된다. 어지러운 세상을 만들고, 사슴을 다른 것으로 둔갑시키는 데 교수들도 한몫하고 있다는 자성은 없다.
한 구인·구직 업체가 최근 직장인들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8명꼴로 연말 우울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한 해 동안 성취한 것이 없다는 허무감, 화려하고 들뜬 분위기 속에서의 소외감·박탈감, 새해에는 뭔가를 이뤄야 한다는 중압감 등을 호소했다. 직장인들이 이런데 취업에 실패한 청춘, 일자리에서 쫓겨난 중년은 어떨까. 우울증 환자의 30%가량이 연말에 증세가 나빠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보는 것 말고는 딱히 즐거운 일이 없다고 푸념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도 모두 험한 세상을 잘 건너온 이들이다. 한 해 동안 수고 많았다는 칭찬을 들을 자격이 있다.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