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국민연금법은 대놓고 전업주부를 차별한다. 정부가 1988년 국민연금을 도입할 때 반발을 줄이기 위해 최대한 적용 예외를 많이 뒀다. 전업주부가 대표적인데 그때는 배려였는지 몰라도 지금은 차별이 됐다. 남성 위주의 사고방식도 한몫했다. 돈 버는 남편 연금에 기대 살면 된다는 남성 위주 문화의 잔재다. 27년 동안 세상이 수없이 바뀌었는데도 이 조항은 유지됐다.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증가하고 양성평등 시대로 접어든 지 오랜데 아직도 그대로다. 이뿐 아니다. 전업주부는 다쳐도 장애연금이 안 나오고, 9년 동안 보험료를 냈어도 유족연금을 못 받는다.
이런 사각지대에 빠진 전업주부가 661만 명에 달한다. 한데 이들의 답답함을 덜어줄 수 있었던 결정적인 기회가 허공으로 날아갔다. 25일 국회 공적연금 강화와 노후빈곤 해소를 위한 특별위원회(이하 특위)가 아무런 소득 없이 활동을 마쳤다. 특위 산하 법안심사소위원회가 전업주부 차별 철폐에 합의해놓고도 전체 회의에서 ‘공무원연금 재정절감분 20% 사용’을 두고 싸움만 하다 논의조차 안 했다.
남녀의 노인 빈곤율을 따지면 여성이 5.4%포인트 높다. 40~50대 여성들도 남성보다 훨씬 노후준비가 덜 돼 있다. 여성 빈곤 노인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여성의 마지막 비빌 언덕이 국민연금이다. 세간에서 국민연금을 두고 ‘용돈연금’이라고 비판한다. 이 용돈연금도 여성 노인에게는 천수답에 내리는 가랑비 같은 존재다.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연금 특위에서 보건복지위원회로 되돌아갔다. 30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연다고 한다. 어떤 다른 현안보다 먼저 논의해야 한다. 야당이 전업주부 차별 철폐를 다른 사안과 연계해서는 안 된다. 우선 이것부터 통과시키고 다른 것은 나중에 논의해도 된다.
이에스더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