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가락시장에서 도매업체 서울청과의 직원이 정가수의매매를 하고 있다. [사진 농림축산식품부]
#. 전남 영암군은 전국 무화과 생산량의 60%를 담당하는 주산지다. 그러나 무화과는 사람들이 많이 먹는 과일이 아니어서 판매할 수 있는 창구가 적었다. 영암지역 무화과 생산자 단체 세 곳이 각각의 거래처가 있어 협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농산물 도매업체 서울청과가 틈새를 공략했다. 영암 무화과의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정가수의매매를 제안했고 분리된 세 개 출하단체 모두와 거래할 수 있었다.
진화하는 농산물 유통
올해 정가수의매매 거래 16.3%
많은 물량 취급, 대형유통사 참여
값 변동 줄고 도매시장도 활성화
이정민 서울청과 과장은 “경매는 시공간에 제약이 있을 뿐 아니라 많은 물량을 특정 중도매인이 취급할 수 없어 대량 거래에 불리했다”며 “정가수의매매를 도입하면서 도매시장을 이탈했던 규모가 큰 출하단체와 대형유통업체를 다시 도매시장으로 불러들이는 기반을 갖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농산물 가격에도 변화가 일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7개 도매시장을 대상으로 정가수의매매 시행 후 23개월간 농산물의 가격 변동폭을 조사했더니 가격변동계수(평균값을 기준으로 가격이 오르내리는 폭)가 4.1%포인트 줄었다. 그러나 도매시장에서 80%가 넘는 농산물이 여전히 정가수의매매가 아닌 경매로 팔려나가고 있다. 경매 방식을 고수하는 농가나 도매인이 아직 많다.
이에 따라 농림축산식품부는 정가수의매매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도매시장 시설 확충에 쓸 수 있도록 올해 470억원 자금을 지원했다. 강원 춘천시와 경북 안동시에 저온창고도 한 곳씩 짓기로 했다. 도매시장 평가 개편, 정가수의매매 거점시장 확대, 경매사 자격 개편 같은 보완 대책도 마련했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정가수의매매=생산자가 사전에 제시한 가격을 보고 구매자가 물량을 얼마나 사들일지 정하는 ‘정가매매’, 경매에 붙이지 않고 판매자와 구매자가 1대 1로 가격과 물량을 협상하는 ‘수의매매’를 합한 말. 그날그날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급등락할 위험이 있는 일반 경매와 반대되는 농산물 거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