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이 이러니 추가적인 성장세 확보를 위해서는 질적 성장, 즉 생산성의 증가가 요구된다. 정부에서 역점을 두어 추진하는 창조경제는 혁신과 기술발전을 북돋워 생산성을 높이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창조경제혁신센터와 같은 부분적 성과에도 경제전반에 뚜렷한 성과를 가져오리라는 기대는 크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제도 차이가 경제 성과 차이로 연결
다른 하나의 길로서 제도개선 내지 구조개혁을 들 수 있다. 재산권이나 시장개방 정도와 같은 경제제도는 물론 규제의 질이나 사회안전망, 갈등관리제도와 같은 정치·사회적 제도를 정비하는 것은 사회적 생산함수 자체를 변화시키는 길이 된다. 경제 전반의 효율성을 높이고 폭넓은 참여를 통해 사회적으로 최적의 선택을 할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MIT의 대런 애쓰모글루 교수는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혁신과 투자유인을 제공하는지의 여부를 핵심요소라고 말한다. 좋은 제도는 생산요소의 질을 개선할 수도 있다. 교육제도를 통해 노동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은 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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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제도와 성장 간의 관계가 장기적인 관계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외부적인 충격이 있을 때 이에 얼마나 잘 대응하는가는 정부의 효과성이나 사회적 갈등의 정도 등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1980년 2차 오일쇼크 당시 한국은 평가절하와 통화 긴축, 에너지효율 증진 등 교역조건 악화에 대한 교과서적인 대응을 통해 단기간의 경기위축 후 회복을 이뤄낼 수 있었다. 그러나 터키와 브라질은 인기주의 정부가 외채를 늘리는 정책으로 대응했고, 강력한 이익집단으로 인한 임금경직성 때문에 효과적으로 가격조정정책을 실행할 수 없었다.
이 예에서 드러나듯이 한국의 제도는 개도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다. 선진국들과 비교했을 때 아직 갈 길이 멀고 우리와 비슷한 소득수준의 나라들에 비해서도 추세선 한참 아래에 있다. 중장기적 성장전망을 어둡게 하는 부분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노동시장과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구조개혁논의가 광범위하게 일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우리 경제의 성장세 저하가 일시적이고 주기적이기보다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 단기부양보다는 장기적인 접근이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다. 구조개혁은 제도 변화이고 새로운 제도의 변화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기업, 이권보다 생산성 추구해야
사회적 관점에서의 소망스러움과 기득권층의 반대 두 가지 입장을 설득과 대화를 통해 조화시키는 것, 다시 말하면 우리 사회의 갈등관리와 문제해결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요소로 대두되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가 소득불평등, 민족이질성 등 사회갈등 자체는 상대적으로 양호하지만 민주주의 성숙도나 정부의 효과성 등 갈등관리능력은 상당히 낮게 평가되는 점은 곱씹어볼 문제다.
정치적 민주화와 사회경제적 제도발전이 어느 정도 이뤄진 상황에서 좋은 제도의 정착은 많은 경우 기득권층의 지대(rent)를 줄여나가는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지난달 있었던 면세점 선정은 우리 사회 제도수준의 맨 얼굴을 보여준 사례로 판단된다. 선정기업 발표 후 단 며칠 만에 일부 기업의 시가총액이 4배 가까이 늘어날 정도로 커다란 이권을 정부가 할당했다. 시장기능에 의하지 않고 할당의 형태를 취함으로써 사회 후생이 줄어들 것으로 판단되는데다 중장기적으로도 우리 경제가 상당한 해악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기업들로 하여금 생산성을 늘리려는 노력보다는 이권, 혹은 지대 추구(rent seeking)에 주력하게 하는 등 애쓰모글루 교수가 그토록 강조하는 인센티브 메커니즘 확대와는 반대 방향의 시그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