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17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각각 합병계약 승인 안건 등을 통과시켰다. 삼성물산 주총에선 그간 합병에 반대해온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 등이 ‘반대표’를 던졌지만 찬성률 69.5%로 합병안은 원안대로 통과됐다. 이로써 두 회사는 9월 1일 합병을 완료하고 매출 34조원(지난해 기준)의 글로벌 의식주휴(衣食住休)·바이오 선도기업으로 재탄생한다.
69.5% 찬성 엘리엇 눌러
입사 24년 후계구도 완성
“주주 권익 챙기지 않으면
제2, 제3 엘리엇 나타날 것”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하고 있던 이 부회장은 합병법인의 지분 16.5%를 갖게 된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지분이 0.6%에 불과하지만 합병 법인을 통해 삼성전자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삼성생명에 대한 지배력도 그대로 유지한다.
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후 24년 만에 이 부회장 중심의 후계 구도가 완성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그룹 핵심 관계자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실용적인 이른바 ‘JY 리더십’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엘리엇의 저돌적인 공세 속에서 합병을 이뤄냈지만 이번 사례는 삼성은 물론 국내 기업 전체에 큰 숙제를 남겼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안고 있는 지배구조의 약점이 노출됐고, 이는 투기자본이 언제든지 국내 기업을 공격할 수 있는 명분을 줬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위원인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해외 투기자본이 국내 반(反)기업 정서를 간파하고 이를 이용해 공격에 나서고 있다”며 “경영권이 안정돼야 기업이 투자·성장·고용에 기여할 수 있는 만큼 차등의결권·포이즌필 같은 경영권 방어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주주가치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도 화두를 던졌다. 기업지배구조 전문가인 강성부 LK투자파트너스 대표는 “이번 삼성-엘리엇 분쟁은 그간 주주 친화 정책에 소홀했던 국내 대기업에 시장이 던진 ‘경고 메시지’”라며 “기업가치와 주주 권익을 높이는 데 신경 쓰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엘리엇이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글=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