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색 페인트로 칠한 담벼락에는 꽃과 나비 등 벽화가 그려져 있고 곳곳에 마련된 화단에는 팬지·천인국 등 다양한 꽃이 심어져 있다. 가로등과 보안등도 밤길을 환하게 비춘다. 골목 어귀마다 폐쇄회로TV(CCTV)가 설치돼 24시간 감시한다. 누르면 바로 경찰서와 구청으로 연결되는 비상벨도 갖춰져 있다. 주민 정진아(55·여)씨는 “예전엔 조금만 어두워져도 집밖으로 나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밤 산책을 나오는 주민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부평구 ‘여성이 편안한 500보’
첫 대상지로 선정된 산곡1동과 청천1동은 노동자들이 만든 동네였다. 일제 시대 병기공장인 육군 조병창을 비롯해 각종 공장들이 부평 지역에 들어서면서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공장 주변에는 노동자들이 사는 천막촌도 하나둘 생겨났다. 시간이 흐르면서 천막촌은 사라졌지만 동네는 여전히 침체됐다. 2000년대 중반부터 재개발이 추진됐지만 이마저도 경기 침체로 지지부진해졌다.
사람들이 떠난 자리엔 노숙자들이 자리잡았다. 어두컴컴한 골목길은 불량 청소년들의 아지트가 됐다. 쓰레기 무단투기가 늘면서 동네 곳곳에서 악취를 풍겼다. 절도 등 강력사건이 끊이질 않아 부평구 22개 동 중 강력범죄 비율도 가장 높았다.
하지만 ‘안전한 귀갓길’ 조성에 나서면서 마을이 확 바뀌었다. 주민들 스스로 매주 1~2차례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냈다. 우선 낡은 콘크리트 벽을 새롭게 단장했고 잡풀이 우거진 공터엔 의자 등을 놓아 주민 쉼터로 만들었다. 미혼 여성들이 주로 거주하는 다세대주택의 창틀과 배관엔 잘 지워지지 않는 형광 페인트를 칠해 범죄 예방에 나섰다. 주변엔 ‘담장과 가스배관에 특수 도료가 칠해져 있다’는 경고문도 내걸었다.
또 주민 대부분이 노인이란 점에 착안해 경사진 골목길엔 계단을 새로 만들었다. 길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마을 지도와 위치 표시등을 곳곳에 내걸었다. 고추 등 작물을 심는 틈새 화단도 조성해 주민들이 직접 가꾸도록 했다. 경찰과 협의해 가로등과 CCTV도 설치했다.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강력범죄는 물론 쓰레기 무단투기도 10분의 1로 줄었다. 김용복(68) 산곡1동 20통장은 “처음엔 ‘왜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며 반대하던 주민들도 나중엔 서로 참여하겠다며 적극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청천1동의 경우 주민들 요구가 잇따르면서 당초 사업 구간에 500m를 추가하기도 했다.
올해는 부개1동에서 안전한 귀갓길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홍미영 부평구청장은 “500보 사업은 관이 주도하지 않고 지역 주민이 직접 만들어가는 사업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안전한 마을 가꾸기 문화를 부평구 전역으로 확산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