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의 주말여행. 일요일은 일정이 빡빡하다. 원고도 써야 하고 결혼식장 두 곳과 장례식장도 가봐야 한다. 좀 어려울 것 같다고 하자 매달리기 시작한다. 초등학생 아이의 간절한 소원이라며 부성애를 건드린다. 결국 결혼식장 한 곳의 위치를 알려주며 약속을 잡았다. “내가 쉬워 보이나 봐.” 아내는 남편에게 훈계한다. “도와줄 수 있는 위치인 것이 감사한 거죠.” 남편은 철봉(매달림)으로 서 있는 게 힘이 부치는데 아내는 지혜로운 나무로 성장 중이다.
오늘의 주제어는 ‘위치’다. 내가 알려준 결혼식장 위치와 아내가 환기시켜 준 사회적 위치. 알아내기도 간단치 않고 지켜내기도 수월치 않은 게 ‘위치’다. 졸음으로 가득했던 중·고등학교 물리 시간으로 기억이 이동한다. 칠판 위의 다섯 글자는 ‘위치에너지’. 나는 이 말의 정확한 뜻을 아직도 모른다. 다시 설명 들어도 모를 것 같다. 이럴 땐 내 방식으로 ‘수목한계선’을 확대한다. 교실 안에선 과학탐구영역이지만 학교 밖에선 사회탐구영역으로 바뀐 게 많다. “고급 위치에 오른 사람은 자신의 에너지를 고상하게 써야 할 의무가 있다.”(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인가)
위치를 망각한 각종 언행이 연일 뉴스를 달군다. 분을 못 참고 교수들에게 막말 e메일을 보낸 대학 이사장도 불길 확산에 한몫했다. 이 사례가 특이한 건 등장 즉시 퇴장했다는 점이다. 버티기, 굳히기 없이 즉각 사퇴했다. 화끈하게 화를 내고 화끈하게 자리에서 물러난 상황이다.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창고에 쌓인 재고(분노)를 죄다 방출하고 나니 후련하다? 아니면 조금 참고 마음을 다스릴 걸 후회된다?
기억은 총알을 타고 신병 훈련소까지 진입한다. 뙤약볕 아래 엎어졌다 일어났다 하면서 귀에 박히도록 들었던 그 말. “각자 위치로.” 지금 대한민국 부활 캠페인 제목으로 적격 아닐까. 배경음악으론 시인과 촌장의 노래를 깔고 싶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하덕규 작사·작곡 ‘풍경’ 중에서)
주철환 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
▶ [분수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