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7일 하루 간격으로 한국을 찾은 미국과 중국의 외교 차관보들을 지켜보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무대는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2층 로비였다. 고위 외교관들이 한국 외교부 당국자들을 만난 뒤 기자들과 간단한 문답을 주고받는 곳이다.
[현장에서] '중국의 입' 8년 경력 류
사드 반대 홍보대사 역할
'아시아 중시 정책' 선봉 러셀
북 미사일 위협 15분 강조
류 부장조리는 8년 동안 ‘중국의 입’ 역할을 한 최장수 외교부 대변인이다. 37세이던 2001년 최연소로 외교부 대변인이 됐다. 그는 국회에서 나경원 외통위원장을 만나 “중국에선 미인에 대한 관심이 많다”며 너스레를 떨다가도 곧 정색을 하고 사드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마치 사드 배치를 반대하기 위해 한국에 온 홍보대사처럼 활동했다.
그의 행보를 전하는 중국 언론이 오히려 차분했다. 환구시보(環球時報)와 인민망(人民網) 등은 한국이 사드 문제로 미·중 사이에서 고민에 빠졌다는 한국 언론을 인용 보도했다. 중국 외교부도 ‘활동 보도자료’를 내지 않았다. 한국에서만 치고, 본국에선 빠지는 ‘강약 조절’이었다.
17일 오전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외교부를 방문하면서 미·중의 ‘장외전’이 성사됐다. 그 역시 조태용 1차관, 이경수 차관보와 만났지만 사드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하지만 2층 로비에서 카메라 앞에 서자 조목조목 북한 탄도 미사일 개발의 위협과, 한·미의 선택에 대해 설명했다. 모두발언부터 문답까지 15분 가까이 이어졌다.
중간중간 류 부장조리를 의식한 발언이 등장했다. 표현은 “내 친구 류젠차오도 여기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내용은 “제3국(중국)이 배치되지도 않은 안보 체계에 대한 가능성을 상정하다니 희한하다” “어제 류젠차오가 한 이야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이 많지만, 난 사드 이야기를 하러 온 게 아니다” 등이었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의 아시아 중시 정책에 주춧돌을 놓은 국무부 한반도 라인의 핵심다운 ‘노련한 펀치’였다.
주한 미 대사관이 이런 그를 측면지원했다. 트위터에 거의 실시간으로 사진을 올리며 관련 소식을 전했다. 피습 사건 이후 아직 업무에 복귀하지 못한 마크 리퍼트 대사까지 외교부 청사에 나타났다. 당초 참석 명단에 없었으나, 본인이 참석을 결정했다고 한다.
외교부 당국자들은 “한·미 관계도, 한·중 관계도 더없이 좋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행보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삼각관계의 주인공으로 양쪽의 구애에만 취해 있는 한국에 미·중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경고를 보낸 것이기 때문이다.
안효성 정치국제부문 기자 hyoz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