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다이어트(줄이기)는 선진국에선 이미 일반화돼 있다. 현재 미국 뉴욕의 타임스스퀘어에선 차로 줄이기 공사가 한창이다. 차로를 줄이면 교통량이 감소해 차가 덜 막히고, 보행자가 늘어나 거리 경제가 살아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본 도쿄 번화가인 오모테산도는 ‘주차장 없는 상권’을 콘셉트로 재개발됐다. 실제로 불법주차가 줄면서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 도로 줄이기의 이론적 근거는 ‘브라에스의 역설(Braess’ paradox)’. 이 역설은 도로를 줄이면 오히려 교통량이 감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해성 건축도시공간연구소장은 “차량의 급격한 증가로 사회간접자본(SOC)만으론 교통난을 해결할 수 없게 됐다”며 “도심에서 차를 밀어내고 순환도로를 활성화하는 도시 디자인이 각광받는 이유”라고 말했다.
영중로 시뮬레이션 해보니
어깨 부딪히던 보행로 두 배로
차량 속도는 큰 변화 없어
경찰 "노점 정비부터" 신중
노점상들 반발 설득이 숙제
영중로의 보행 서비스 수준은 어깨를 부딪혀야 겨우 걸을 수 있는 ‘D등급’이다. 영등포구는 차로를 하나 줄이면 보행공간의 너비가 5~7m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보행 수준은 B등급(보행자 간 평균 거리 2m)으로 올라간다.
서울시는 도로를 줄여도 교통체증이 심해지지 않을 것이란 영등포구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서울시 김현식 보행친화기획관은 “영중로를 보행환경개선지구에 포함시켜 시 예산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영등포구는 도로를 줄일 경우 교통량이 현재와 같더라도 출퇴근 시간대 평균 차량 속도가 현재 시속 18㎞에서 17㎞로 줄어들 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교통 혼잡에 대한 1차적 책임을 지는 경찰은 신중한 자세다. 영등포경찰서 관계자는 “우선 노점들을 정비한 다음 보행 환경이 개선되지 않으면 그때 도로 줄이기에 나서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점상의 반발도 부담이다. 떡볶이를 팔고 있는 양모(49·여)씨는 “노점을 영중로에서 내쫓으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은 지자체가 이해당사자 설득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서울시립대 정석(도시공학) 교수는 “선진국이 도로를 줄이는 데 보통 6~8년 정도 걸렸다”며 “정책 아이디어를 단번에 실현한 사례가 없는 만큼 장기적 비전과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장혁진 기자 analog@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브라에스의 역설=독일 보쿰루르대 교수였던 디트리히 브라에스가 주창한 가설. 도로를 넓히면 오히려 교통수요가 늘어 체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1999년 보수공사를 위해 남산 2호 터널을 폐쇄했을 때 터널 주변의 차량 평균 속도가 시속 29.53㎞에서 30.37㎞로 개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