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 내 성적 10점 만점에 3점
4경기 연속 무실점한 건 처음
호주전 번즈 슈팅 막은게 가장 뿌듯
아직도 고칠게 많은 넘버3로 생각
- 결승전이 끝나고 아쉬워서 잠도 못 잤다고 들었다.
“지난해 12월 중순 제주도 전지훈련부터 한달 반 가량 대표팀 동료들과 함께 생활을 했다. 막상 준우승을 하고나니 무척 아쉬웠다. 결승에서 준비한 대로만 하면 이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내 축구 인생에서 가장 아쉬운 순간이었다. 그래도 슈틸리케 감독님이 나를 안아주시면서 ‘잘했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기뻤다.”
김진현은 아시안컵 5경기에 출전해 4경기에서 무실점을 기록했다. 김진현은 “4경기 연속 한 골도 허용하지 않은 건 내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털어놨다. 세이브(직접 선방)도 15차례나 기록했다. 김진현은 “다리에 쥐가 올랐는데도 끝까지 뛰어준 동료들의 도움 덕분이다. 수비수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해 준 공격수들도 고마웠다”고 말했다.
- 아시안컵에서 스스로 꼽는 최고의 선방은.
“조별리그 3차전 호주전에서 후반 25분 네이선 번즈의 슈팅을 막은 것이다. 그 선수가 페널티 박스 안으로 무서운 속도로 치고 들어오더니 눈깜짝할 사이에 슛을 날렸다. 슈팅 템포도 무척 빨랐는데 침착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면 막지 못할 뻔 했다.”
- 8강전과 결승전에서 연장전을 치렀다. 만약 승부차기까지 갔다면 어땠을까.
“승부차기는 자신감이다. 얼마나 나 자신을 믿느냐에 달렸다. 승부차기를 했다면 무척 떨렸겠지만 그런 상황을 미리 대비한 것도 사실이었다. 승패에 연연하기보다 나와 동료선수들을 믿고 당당하게 나섰을 것 같다.”
김진현의 집안은 스포츠 가족이다. 김진현의 큰이모부는 1988년 서울올림픽 남자 핸드볼에서 은메달을 따냈던 신영석 씨다. 김진현은 “할아버지가 축구, 아버지·어머니는 농구·배구, 누나는 핸드볼, 막내 이모는 유도 선수를 지냈다”고 말했다.
- 골키퍼를 하게 된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축구와 농구를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매년 10cm씩 성장할 정도로 키가 컸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축구부 감독님의 눈에 들었고, 단지 키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골키퍼를 맡았다. 아버지는 농구, 어머니는 배구 선수 출신이기에 유전적으로 손을 잘 쓰는 것 같다(웃음).”
-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축구를 그만 두려 했다. 기량이 늘지 않아 축구가 재미없게 느껴졌다. 그 때 고등학교 은사님이셨던 김학철 감독님(현 서해고 감독)이 붙잡아 주셨다. 감독님과 함께 있으면서 공을 갖고 발로 하는 기술도 배웠다. 그때부터 빌드업(공격 전개) 능력을 키웠다.”
- 아시안컵을 계기로 대표팀 주전 골키퍼로 올라섰는데.
“아니다. 나는 여전히 ‘넘버3’ 골키퍼라고 생각한다. 아시안컵 활약을 점수로 매기자면 나는 10점 만점에 2~3점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고쳐야 할 게 많다. 성룡이형이나 승규와의 경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골키퍼로서 특별한 비법은 없다. 오직 날아오는 공은 다 막아야 한다는 게 내 신조다. 훗날 많은 축구팬들로부터 ‘골키퍼는 무조건 김진현’이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 더욱 열심히 뛰겠다.”
글=김지한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