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그간 ‘법치’와 ‘원칙’을 중시하면서 법조인, 특히 엘리트 검사 출신들을 정부 요직에 발탁해왔다.
박근혜 정부 '법조인 발탁' 징크스
각종 스캔들과 항명 사태에 등장
조응천 뺀 3명은 사시 24회 동기
"정권보다 본인의 명예 중시하는
검찰 특유 문화가 정치 파문 불러"
그러나 공교롭게도 박 대통령이 의지하는 법조인, 그중에서도 검사 출신에게서 각종 스캔들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9일 김기춘 실장의 국회 운영위원회 출석 지시를 거부하며 사직서를 던져 ‘항명(抗命) 사태’ 파문을 일으킨 김영한(58·사시 24회)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바로 김 실장의 계보를 잇는 ‘검찰 공안통’ 출신이다.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하느니 차라리 사퇴하겠다”는 그의 태도에 대해선 여당 내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윤회 동향보고 문건’ 파문으로 정국을 뒤흔들어 놓은 조응천(53·사시 28회)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 또한 수원지검 공안부 부장검사를 거친 검찰청 인맥이다.
조 전 비서관은 재직 중 사적으로 대통령기록물인 청와대 내부 문건을 박지만 EG 회장에게 유출시킨 데 이어 정윤회 동향문건 사건이 터지자 청와대를 향해 비판의 날을 세워 여권 인사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성접대 의혹’에 휩싸여 논란 끝에 2013년 3월 사퇴한 김학의(59·사시 24회) 전 법무부 차관, ‘혼외자’ 논란으로 2013년 9월 검찰 수장에서 물러난 채동욱(56·사시 24회) 전 검찰총장은 검찰 수뇌부였다. 채동욱·김학의·김영한 3인은 사시(24회)와 사법연수원(14기) 동기이기도 하다.
판사 출신 가운데도 인사사고는 있었다. 초대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됐다가 부동산 문제 등으로 검증 도중 낙마한 김용준(77·고등고시 9회)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장, 박 대통령과 기초연금을 놓고 의견 마찰을 빚다가 2013년 9월 보건복지부 장관직을 스스로 던진 진영(65·사시 17회) 새누리당 의원이 판사 출신이지만 정권에 부담을 준 정도는 검사 출신에 비하기 어렵다.
특히 공직기강을 바로잡아야 할 민정수석실에서 연거푸 혼란이 시작되는 것에 대해선 여야 모두 황당해하는 분위기다. “콩가루 청와대”(새정치민주연합 한정애 대변인)라는 비판에도 청와대 관계자들이 “뭐라고 할 말이 있겠느냐”며 대응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다.
김영한 항명 사태와 조응천 전 비서관의 문건유출 사태에 대해선 박근혜 정부 들어 끊임없이 지적되고 있는 정권 내부의 불통 문제가 우선적 원인으로 꼽힌다. 박 대통령에게 대면보고할 기회가 많지 않고, 쌍방향 커뮤니케이션보다는 일방향의 지시 문화가 자리 잡다 보니 누적된 불만이 어떤 상황을 계기로 터져 나오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기본적으로는 검찰 특유의 조직문화가 원인일 수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검사 출신은 어떤 상황에 직면하면 특유의 행동성향을 보이는 것 같다”며 “조직보다 자기 자신의 원칙과 명예를 매우 중요시한다”고 지적했다. 김영한 전 수석은 지난 9일 항명 당시 “국회에 나가느니 차라리 사퇴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주변에 “사퇴가 내 자신과 내 직(職)의 명예를 지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고 한다. 정부에 부담이 되느냐 아니냐 보다 자신의 명예를 우선시했다고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명지대 김형준(정치학) 교수는 “현 정부는 ‘그룹싱킹(집단사고)’이 안 되고 있다”며 “중요한 결정이 일방향으로 나오니 각종 오해와 억측이 청와대 내부와 고위직에서도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