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서울 와도 노마드 … 짚풀에서 작은 연민을 본다

중앙일보

입력 2015.01.06 00:24

수정 2015.01.06 10:03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양혜규가 돌아왔다. 베를린에서 식민·근대화·이산 등 묵직한 주제를 다뤄온 그가 올해 바라보는 곳은 아시아다. 새로 발견한 재료는 인조짚, 다음달 리움 개인전에서 선보인다. 양혜규가 서울 연건동 작업실서 제작 중인 작품들 사이에 섰다. 왼쪽은 ‘중국신부-앉아있는 여자’, 오른쪽은 ‘바다연꽃’(가제).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출발은 늘 새롭습니다. 새해를 맞아 ‘2015 또 다른 시작’이란 코너를 마련합니다. 올해 우리 문화계에서 남다른 활약이 기대되는 이들을 찾아 나섭니다. 첫 순서는 미술계의 어엿한 중견이지만 여전히 ‘처음’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설치미술가 양혜규(44)입니다.

양혜규(44)의 전시는 한국의 관객들에게 그동안 ‘목소리와 바람’이었다. 베니스 비엔날레(2009), 카셀 도쿠멘타(2012), 아트 바젤의 ‘언리미티드’(2014) 등 세계적 미술 행사에 참여했지만, 소식으로만 전해졌을 뿐 국내 활동은 뜸했다. 베니스 비엔날레에 내놓았던 ‘살림’과 2013년 제작한 향신료를 활용한 판화(Spice Moons)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됐다.

2015 또 다른 시작 ① 미술가 양혜규
리움서 다음달 11일 개인전 열어
다시 UAE·베이징으로 동분서주
'사대주의 빠진 난쟁이만 양산'
서울 살며 내가 느낀 의문이다

양혜규가 돌아왔다. 다음달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서 개인전을 연다. 서도호(53)의 ‘집 속의 집’(2012) 이후 리움이 두 번째로 마련한 한국 현대미술가의 대규모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는 199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유학 가 눌러앉은 지 21년 만이다. 베를린을 거점으로 국제 창작 스튜디오 프로그램을 활용하며 활동해 온 ‘노마드 작가’의 귀환이다. 지난 7월부터 서울 연건동에 작업실을 열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출퇴근하고 있다. 서울에 ‘생산기지’를 둔 시민이다. 다음달 11일 리움 전시 개막 후엔 중동으로 날아간다. 3월 아랍에미리트연합의 토후국 중 하나인 샤르자에서 열리는 샤르자 비엔날레(총감독 주은지)에 참여한다. 10월엔 베이징 798 예술구 내 울렌스현대미술관(UCCA)에서 중국 첫 개인전을 연다.

 세밑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첫 작업실 공개다. 상가 3층 작업실 현관문 안쪽엔 ‘殺象思象(살상사상:Shooting the Elephant Thinking the Elephant)’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문을 열자 인조짚이 쌓여 있었고, 철제 가설 책장에는 작업 계획표, 공항버스 시간표 등이 붙어 있었다.


옷걸이에 전구·가발 등을 건 ‘약장수-털투성이 광인 결성’(2010). [사진 런던 자블루도비츠 컬렉션]
 -‘살상사상’은 무슨 뜻인가.

 “이번 전시의 화두다. 지어낸 말이다. 코끼리는 우리에게 없는 것이다. 사자춤도 그렇다. 우리뿐 아니라 중국·일본에서도 발견되는 민속 현상이다. 과거 아시아에서는 이곳에 없는 동물의 힘을 믿고, 그걸 불러들이며, 그 동작을 상상하며 살았다. 이 새로운 것들이 변화를 이끌 거라는 믿음이었다.”

 그는 블라인드, 빨래건조대, 카드고지서 봉투, 스팸 통조림 등 건조한 공산품에서 연민을 찾고 작은 역사를 발굴한다. “삶에서의 자극을 놓치지 않기 위해 생활을 단순화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발견한 새 재료는 인조짚이다. 바퀴 달린 옷걸이에 짚을 엮어 씌운 설치에는 ‘중국 신부’ ‘바다 연꽃’ 등의 제목이 붙었다.

 - 왜 짚풀인가.

 “짚은 향토·전통·민속이라는 프레임이 강한 재료다. 나는 여기에 친밀함과 반감을 동시에 느낀다. 그런데 인조짚이라는 게 있더라. 이걸 흉한 현대성이라고 해야 할지, 편리함이라고 해야 할지 헷갈린다. 인조짚을 통해 그 거리감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여전히 많이 돌아다닌다.

 “집 떠난 지 20주년을 맞아 지난해를 안식년으로 정했다. 그러나 바젤·타이페이·휴스턴 등 여러 곳에서 전시를 하는 생활은 여전했다. 바쁘다는 것의 나쁜 점은 나를 원하는 곳에 가지, 내가 원하는 곳에 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중국·인도 등 내가 보고 싶고, 알고 싶은 곳 또한 다녔다. 이른바 ‘육성 여행(nurturing trip)’, 일하러 가서 다 쏟아내고 헐헐하게 빈 상태로 온 게 아니라 채워서 왔다.”

 2016년까지 전시 일정이 꽉 차 있다는 그의 올해 계획은 “지난해 얻은 양분을 갖고, 만나러 다니는 것”이다. 그런 그가 서울서 살며 느끼게 된 의문은 이렇다.

 “우리는 왜 소수의 성공 사례에 감탄만 하고 경각심을 갖지 않는가. 좋은 지정학적 위치, 훌륭한 저변을 갖고 있는데 난쟁이들을 만들고 있다. 이상한 사대주의를 갖고 주변에 의미부여를 못한 채 그저 신기함에 갇혀 있는 건 아닌가. 전시를 통해 젊은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해 보고 싶다.”

 그가 부딪칠 서울살이가 주목되는 이유다.

권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