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인터뷰] 활동중단하는 국민개그맨 김국진

중앙일보

입력 1999.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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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건강 때문입니다. " 개그계의 '대통령' 김국진 (34) 이 TV밖으로 외출한다. 최근 오는 4월 MBC 정기개편부터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수많은 여론조사에서 1등을 놓치지 않고 있는 그로서는 대단한 용단이다.

정상의 달콤함을 맛본 사람이라면 그 자리를 쉽게 포기할 수 없을 텐데. "특별한 질병은 없다" 고 하면서도…. 영웅부재 시대에 소영웅으로 군림해온 그가 범인 (凡人) 으로 '환속' 하려는 속사정부터 들어보았다.

- 얼마나 피곤한가.
"지난 5년간 촬영이 없던 날이 거의 없었다. 하루 3~4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 막다른 벽에 부닥친 느낌이다. 어떤 때는 아침에 두 시간 정도 씨름해야 겨우 일어난다. "

- 스타는 원래 고달픈 법 아닌가.
"코미디는 몸이 건강해야 재미있다. 힘이 떨어지면 연기도 부자연스럽다. 무엇이든 한번 빠지면 끝장을 보고 마는데 지금 상태로서는 승부를 걸 수 없다. 휴식기간은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 "


- 고단수 인기관리는 아닐까. 서태지가 최정상에서 물러났듯이.
"서태지와 비교하다니 영광이다. 그렇지 않다. 서태지는 몸짓 자체가 대단한 영향력이지만 나는 '씩' 웃는 정도에 불과하다. 오죽하면 팬클럽 하나 없겠나. 인기의 덧없음을 잘 알고 있다. "

- 상승세를 탔던 신인시절인 93년에도 1년여 쉬었다. 그리고는 친정인 KBS를 떠나 MBC로 옮겨 파문이 일었잖은가.
"그때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싶었다. 또한 1~3분 짜리 작품을 구상하려 밤을 새운 적도 많았다. 바쁘기보다는 일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미국도 갔고. 이적 (移籍) 은 없을 것이다. "

- 스타를 혹사하는 방송사에 불만은 없는가.
"지금 출연하는 프로 ( '테마게임' '일요일 일요일 밤에' '21세기 위원회' '칭찬합시다' 4개) 모두 좋아서 맡은 것들이다. 즐겁게 보아준 시청자에게 고마울 뿐이다. "

얘기는 활동중단 후에 대한 구상으로 이어졌다. 그는 별다른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시간이 없어 못했던 여행을 실컷 즐기고 비디오로 때웠던 영화도 자주 보겠다고 했다. 책도 많이 잃고 등등. 광고출연도 중단하느냐고 하자 그것은 광고주의 문제라고 재치있게 받아넘겼다.

노총각을 구제할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는 아니냐고 묻자 아직은 모르겠다고 짤막하게 대꾸. 일단 쉬면서 생각하겠다고 대부분을 '유보사항' 으로 미뤄두는 느낌이다.

다만 평소 소문난 효자답게 "어머니와 보내는 시간을 충분히 갖겠다" 고 겸연쩍어 했다.

- 데뷔 9년째다. 인기비결은.
"내세울 게 없다. 키도 크지 않고, 덩치도 작고. 그저 부담없어 보이는 얼굴 때문인 것 같다. 다만 다른 사람보다 직관이 뛰어난 것 같다. 애써 코미디를 연출하지 않아도 예전에 들었던 말이나 이야기가 비슷한 상황이 찾아오면 거의 본능에 가깝게 튀어나온다. "

- '분위기' 가 중요하단 말인가.
"코미디는 분위기와 포인트로 1백% 구성된다. 분위기는 전체 작품의 흐름이다. 초상집에서 웃기거나 흥겨운 장면에서 울면 되겠나. 대본을 받아들면 전체 분위기를 먼저 따진다. 대본이 분위기에 맞지 않으면 건너 띄기도 한다. "
- '포인트' 란 무엇인가.
"분위기에 맞게 반 박자 먼저, 혹은 늦게 치고 빠지는 것이다. 내 차례가 왔을 때 잠시 시간을 끌거나, 선수를 치면 된다. 축구 공격수의 슛 포인트가 일정하다고 치자. 항상 수비수에게 걸리고 말 것이다. 배구 시간차 공격도 같은 이치다. "

- '말의 달인' 이라고 할만한데.
"사실 어눌한 편이다. 또박또박 정확하게 발음하려고 해도 더듬더듬 엉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웃음이 나는 모양이다. "

- 그동안 달라진 것이라면.
"처음에는 토크 코미디로 출발했다. 코미디는 입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94년 '테마게임' 부터 연기를 알게됐다. 자기를 내세우는 것이 토크라면 남의 입장에 서는 것이 연기다. 소중한 경험이다. 지금은 토크와 연기가 반반이다. "

- 사생활에서도 그렇게 웃기나.
"거의 말이 없다. 삼국지에 "말이 많으면 마음이 허한 법이다 '고 적혀있다. 말을 많이 하고 돌아서면 마음이 휑하다. 주위 사람들이 너무 재미없어 한다. "

- 꿈이 대통령이고 연개소문을 존경한다면 '대형콤플렉스' 가 아닐까.
"남자만 있는 3형제의 막내로 커서 어릴 때부터 모험정신이 강했다. 원래 호탕하고 진취적인 것을 좋아하고 나약한 것을 싫어한다. "

-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어왔나.
"노래방에 간다. 야외촬영을 나가도 틈이 나면 마이크로 달려간다. 조금 오래되고 템포가 느린 곡을 즐긴다. '장미' '활주로' '불놀이야' 등 80년대 대학가요제풍 노래가 좋다. 애창곡은 강산에의 '아웃사이더' 다. 분위기를 확 몰고가는 중간부분에 힘이 느껴져 성격에 맞는다. "

- 물론 본인을 웃기는 사람도 있을텐데.
"개그맨 김수용이다. 툭툭 내던지는 말이 대굴대굴 뒹굴게할 정도다. 그와 있으면 두 시간이라도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

- 어떤 모습으로 돌아오겠는가.
"TV는 냉정하다. 한 달 정도 지나면 나도 잊힐 것이다. 일단 거리를 두고 TV를 지켜보겠다.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사람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겠는가. 다만 철저한 코미디를 하겠다. 정말 재미있는 코미디 말이다. 지금의 코미디는 너무 가르치려고 달려든다. 코미디 선택은 결국 시청자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

박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