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김병현이야 김병현”

중앙일보

입력 2007.09.23 06:52

수정 2007.09.23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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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구의 메이저리거 타자를 상대로 마운드에 우뚝 선 김병현(28·플로리다 말린스)은 몹시도 작아 보인다.
그러나 상대를 똑바로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매섭다. 그의 눈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나? 김병현이야, 김병현!” 그는 ‘특이한 성격’을 지녔다고 한다. 도대체 김병현의 그 특이한 성격이라는 것이 뭔가?



콜로라도 로키스는 지난겨울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김병현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공 10개 정도만 실투하지 않았다면 더 좋은 성적을 올렸을 게 틀림없다”고. 10개의 공은 고집스러운 그의 정면승부, 도망가거나 피해야 할 때 도리어 상대를 윽박지르며 맞부딪치다 무너지고 마는 그의 스타일을 말하는 것 아닐까.

1999년 혜성처럼 등장한 작은 체구의 청년, 김병현은 데니스 에커슬리(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이후 끊긴 잠수함 투수의 맥을 잇는 독특한 존재로 부각됐다. 그가 일으킨 센세이션처럼 독특한 성격과 야구관도 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런 김병현을, 그를 아는 사람들은 어떻게 말하는가. 주위에서 말하는 김병현은 역시 남다르다.


#1 김병현의 모교, 성균관대 출신의 한국 프로야구 선수가 대학 시절 겪었던 에피소드. 김병현이 숙소에서 혼자 빨래를 하고 있었다. 이 선수가 다가가 말했다. “형, 제가 해 드리겠습니다. 나오세요.” 그러자 김병현의 입에서 욕설이 터졌다. “야, 이 자식아! 네가 왜 내 빨래를 하냐.” 김병현은 이후 그에게 말도 붙이지 않았다. 의아해하는 이 선수에게 선배들이 말했다. “(김)병현이 형은 누가 먼저 접근하고 친한 척하는 거 싫어해. 자기가 먼저 마음을 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에게 잘해주지.”

#2 김병현의 아버지(김연수씨)는 태권도 사범이었다. 김병현도 어려서 태권도를 익혔다. 거기다 싸움꾼 기질이 있었다. 덩치는 작아도 힘이 좋고 배짱이 좋아 붕붕 날아다녔다. 출중한 싸움 실력은 친구들 사이에 전설로 남아있다. 그래서였을까. 김병현은 광주일고 다닐 때 단체기합에서 열외 특권을 누렸다. 그러나 김병현은 3학년이 되자 엄한 주장이 됐다. 웬만해서는 후배에게 손을 대지 않았지만 분명한 잘못이 있으면 용서가 없었다. 그의 기합은 전례없는 고강도였다.

#3 5월 14일 콜로라도에서 플로리다로 이적한 김병현은 “보기 싫은 얼굴이 없어 좋다”고 말했다. 감독이나 투수 코치와의 갈등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김병현은 콜로라도에 대해 유독 안 좋은 기억을 갖고 있다. 올 시즌 시작과 함께 불펜으로 강등시킨 데 대해 그는 “다른 투수들에 비해 내가 뒤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데 이런 취급을 당했다. 내가 미국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안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현은 한국에 돌아오면 광주 집에 내려가지 않고 서울에 머무르며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는 선배들과 함께 훈련한다. 이 선배들은 김병현이 속내를 제대로 드러내는 상대들이다. 그들은 김병현을 어떻게 볼까.

선배 A: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뭐든지 잘 해준다. 그런데 싫으면 얼굴을 안 보려고 한다. 싫어하는 사람과는 말을 안 하려고 한다.”

선배 B: “나는 병현이한테 정말 많이 배웠다. 야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토록 집중력을 보이는 선수는 내 기억에 병현이밖에 없다. 그런데 병현이는 야구를 사랑하거나 좋아하기보다는 일로서 완벽해지려는, 그런 유형이다. 내일 당장 때려치우더라도 오늘 내 직업이 프로야구 선수면 그걸 놓고 목숨 거는, 그런 스타일이다.”

자의식 덩어리, 외골수…. 김병현에 대한 이런 평가는 대부분 맞다. 때로는 소통 불능까지도 이어진다. 때로는 근거 없는, 지나친 피해의식(구단으로부터 차별받고 있다는)에 사로잡히는가 하면,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사고(사진기자 폭행 파문·2004년)도 쳤다. 김병현은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생활 속에서는 남들과의 약속들도 잘 잊고, 이기적인 면이 많다”고 스스로 진단한 적이 있다.

‘폭주하는 원자로’. 감정을 다스리는 데 있어선 아직 미성년의 벽 속에 갇혀 지내고 있는 건 아닐까. 서른을 눈앞에 둔 김병현이 내년엔 어느 유니폼을 입고 또 어떤 ‘사건’을 경험할지 알 수 없다. 김병현의 일관된 고집, 상대를 가리지 않는 몸쪽 슬라이더 승부는 계속될 것인가.

김성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