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의 임기가 20일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여야는 8일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보건복지부가 재협상의 불씨를 살리려고 양쪽을 중재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민의힘은 7일 협상에서 '보험료 13%-소득대체율 43%' 안을 제안했고, 민주당은 '보험료 13%-소득대체율 45%'로 맞섰다. 보험료를 9%에서 13%로 올리는 데는 의견이 일치했지만, 소득대체율 2%p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2%p 차이 때문에 합의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충분히 합의할 수 있는 차이라는 것이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보험료 13%-소득대체율 44%로 합의하면 어떠냐"고 제안한다. 양 교수는 "보험료를 인상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일단 올려서 시간을 벌어놓고 5년 후 추가적인 개혁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보험료를 19.8%로 배가 넘게 올려야 한다. 연금특위 산하 민간자문위원회에서는 지난해 15%를 다수 의견으로 모았다.
하지만 현행 9%의 보험료를 15%로 올리는 것도 버거울 수 있다. 자영업자나 기업의 부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중간 단계인 13%로 먼저 올린 후 후일을 도모하는 게 현실적인 차선책으로 볼 수 있다. 미래세대의 부담을 줄이려면 소득대체율을 올리지 않거나 최소한 올해 수준(42%)에서 동결하는 게 좋다. 대체율은 2007년 연금개혁에 따라 매년 0.5%p 줄고 있는데, 올해 42%이고, 2028년 40%로 낮아진다.
그런데 연금특위 공론화위원회 시민대표단 숙의 토론에서 소득대체율 50%(보험료 13%) 안이 다수 안으로 선택을 받았다. 공론화 조사에 하자가 있다는 지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결과를 무시할 수 없다. 다수 안 그대로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는 것은 개악이다. 이런 지적이 일자 여야가 대안으로 각각 43%, 45% 안을 냈지만, 여기에서 막혔다.
중요한 것은 1998년 이후 9%로 묶인 보험료율을 26년 만에 13%로 올리기로 합의한 점이다. 양재진 교수는 "보험료를 올려놓고 5년 후 경제 상황 등에 맞춰 연금급여를 자동으로 조정하는 장치를 도입하는 등의 구조개혁을 하면 된다. 이번에 그냥 가면 5년 후 더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 일정도 개혁에 우호적이지 않다. 22대 국회가 개원한 후 연금특위 구성부터 원점에서 새로 시작해야 하고, 2년 후 지방선거, 3년 후 대선이 이어진다. 앞으로 남은 21일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양 교수 제안대로 '보험료 13%-소득대체율 44%' 안을 시행하면 어떻게 될까. 대체율 2%p를 올리는 데 보험료율 1%p 인상이 필요하다. 대체율을 40%에서 44%로 4%p 올리면 보험료 인상분 2%p가 상쇄된다. 보험료를 13%로 올릴 경우 순수한 보험료 인상 효과는 2%p이다. 효과가 그리 작지만은 않다. 기금고갈 시기가 2055년에서 2064년으로 9년 늦춰진다. 내버려 둘 때보다 2093년 누적적자가 3738조원 줄어든다. 여당 제안(13%-43%)보다 580조원 절감 효과가 덜 하지만 야당 제안(13%-45%)보다 972조원 더 아낄 수 있다.
2007년 연금개혁 이후 17년 허송했다. 특히 지난 10여년 동안 재정안정론자(보험료 인상을 중시)와 소득보장론자(소득대체율 인상을 중시)가 첨예하게 맞서면서 한발도 못 나갔다. 22대 국회에도 갈등이 이어질 게 뻔하다.
물론 '13%-44%' 중재안에 비판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최재식 전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은 "협상을 하려다 보니 이런 절충안들이 나온 것은 이해하지만, (여야 협상안이) 그 나물에 그 밥처럼 보인다. 비전과 원칙이 없는 임시방편(ad-hoc)의 대안은 연금제도를 더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 전 이사장은 "소득대체율 인상은 개혁의 역주행이다. 연금액을 높이려면 대체율을 인상할 게 아니라 가입기간 연장과 연금소득월액 상한 상향 등의 재정 중립적인 대안을 선택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