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100분의 1로 준다면, 쏟아내는 독도 100분의 1이 될까?’ 넷플릭스 6부작 ‘기생수: 더 그레이’(이하 ‘기생수’) 1화를 여는 자막이다. 지구에 떨어진 의문의 기생생물이 인간의 뇌를 장악해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기생수’는 인간과 조직에 대한 회의감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1화 초반, 넘쳐나는 쓰레기·오염된 바다·죽은 동물 등 빠르게 전환되는 장면들을 통해 인류가 초래한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시청자에게 각인시킨다.
인간에 대한 반성에서 나아가 ‘변화’에 대한 바람까지 담아내는 경우도 있다. 인공 배양육을 소재로 한 디즈니플러스 12부작 ‘지배종’은 2025년 인공 배양육 시대를 연 생명공학기업 대표 윤자유(한효주)와 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퇴역 장교 출신 경호원 우채운(주지훈)이 의문의 죽음과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다.
이 작품을 집필한 이수연 작가는 “동물을 안 잡아먹어도 되고 식량 생산을 위해서 숲을 밀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오기를 바라는 개인적인 바람이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그는 “그런 시대가 온다면 도살장부터 사료업체, 나아가 수많은 농축산업 종사자들에게 미칠 영향도 매우 클 것”이라며 “피할 수 없는 근미래의 일이기에 (과연)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큰 관심을 얻지 못했던 과거 작품들과 달리, 최근 공개된 작품들은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기생수’는 공개 2주차에 넷플릭스 글로벌 톱10(TV시리즈)에서 영어·비영어 부문 통틀어 1위에 등극했다. 특히 원작 만화가 인기를 끌었던 일본에서도 1위를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지난달 10일부터 매주 공개 중인 ‘지배종’은 OTT 시청 순위를 집계하는 플릭스패트롤에서 디즈니플러스 한국 TV쇼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빼어난 ‘만듦새’도 흥행 요인으로 언급된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SF는 VFX(시각특수효과) 등 막대한 제작비가 필요한 장르이기에 진입 장벽이 있었다”며 “최근 한국 SF 작품들은 상상 속 이야기를 리얼하게 그려내, 해외에서도 제작 역량을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생수’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은 한국을 넘어 일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제작 참여를 논의 중이다.
반면 화려한 특수효과만큼 ‘서사의 기본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일본 소설 혹은 만화 원작에만 기대지 말고, SF 원작 개발, 탄탄한 서사와 인물 설정에도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26일 공개한 넷플릭스 12부작 ‘종말의 바보’는 일본 작가 이사카 코타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지구와 소행성 충돌까지 200일을 앞두고, 눈앞에 닥친 종말에 아수라장이 된 세상의 모습을 담았지만, 개별 인물을 깊이 있게 보여주지 못하고, 감정과 서사의 흐름도 매끄럽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