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다섯 문장이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짧은 설명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막강한 민정수석이란 자리와 대비된다. DJ는 부인이 거명된 옷 로비 의혹 사건 등으로 어수선한 정국을 다잡고 싶어 했다. 처음엔 학자를 기용했지만 이내 검찰 출신으로 바꾸었다. 업무 범위도 민정(民情·백성들의 사정과 형편)에다 사정(司正)을 더했다. 과거로 돌아간 것이다.
민정수석의 공간, 이전보다 줄어
쓴소리 해도 신뢰 거두지 말아야
대통령 의지 관철 통로로는 한계
쓴소리 해도 신뢰 거두지 말아야
대통령 의지 관철 통로로는 한계
김성재 이래 7일 임명된 김주현까지 민정수석은 26명에 불과하다. 배타적 세계다. 이들 중 3명 정도만 직·간접적으로 기록을 남겼을 정도로 가려져 있기도 하다.
우선 문재인 전 대통령이다. 그는 자서전(『운명』)에서 대북송금 특검 수용이나 검찰·국가정보원·국세청·감사원 개혁은 물론이고 전시작전통제권 회수와 용산 미군기지 평택 이전, 방폐장 건설, 노동문제까지도 주도했다고 썼다. 대선자금 수사나 측근 비리(나라종금) 사건을 관리했고, 한·미·대북 관계 등 외교안보 문제도 중재했다고 한다. 그는 대통령 인사권을 언급할 때도 ‘우리’라고 했다. “우리는 첫 국방장관으로 준비된 카드가 없었다”고 말이다. 실로 ‘왕수석’이었다.
마지막 수석인 조대환은 “(출근) 1주일 만에 혈압약을 다시 복용했다”고 할 만큼 격무였지만, 정작 박 전 대통령 구속영장 청구 건에 대해선 사전협의조차 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남듬길』). 스스로 ‘앉은뱅이 용틀임’이라고 했다.
셋을 가른 건, 결국 대통령과의 관계였다. 대통령이 어디까지 용인하느냐였다. 대통령이 신임을 거두면 아무리 내로라하던 인사(최재경·신현수)도 몇 달 못 가곤 했다. 분명 가장 신뢰하는 사람을 민정수석에 앉혀야 하지만 민정수석에 앉혔다면 어떻든 계속 신뢰해야 했다. 무슨 말이든 할 수 있게 해야 했다. 그게 직(職)의 본질이어서다.
사실 윤석열 대통령은 민정수석의 관점에서 보면 썩 좋은 보스는 아니다. 국정농단 수사를 통해 민정수석의 공간을 확 줄이는 바람에 훨씬 고난도가 됐는데, 할 수 있는 일도 제한적이 됐다. 윤 대통령은 게다가 불편한 소리를 하면 “내 편 안 든다”고 서운해 한다고 소문나 있다. 과거와 같이 ‘활약’을 하기에 가혹한 조건이다. 그나마 민심의 통로로는 쓸 만할 테지만, 대통령 의지를 관철하는 수단으론 턱없이 미흡할 것이다. 그런데도 기대한다? 험로에 들어선 윤 대통령에겐 사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