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트렌드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일들도 반복되면 의미가 생깁니다. 일시적 유행에서 지속하는 트렌드가 되는 과정이죠. 트렌드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가치를 반영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모호함을 밝히는 한줄기 단서가 되기도 하고요. 비크닉이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 의미 있는 트렌드를 건져 올립니다. 비즈니스적 관점에서는 물론, 나아가 삶의 운용에 있어서 유의미한 ‘통찰(인사이트)’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절로’ 커플 매칭률 40%…템플스테이 아닌 예능처럼
지난달 23일 ‘나는 절로’ 기획자이자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인 묘장스님을 만나 행사의 취지와 비결을 물었다. 그는 “저출생⋅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해 불교가 나섰다”며 “남녀의 자연스러운 만남이 연애를 넘어 결혼⋅출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나는 절로’ 프로그램에는 ‘저출생⋅고령화 사회의 심각성’을 주제로 한 교육을 진행한 적도 있고, 인구교육 활성화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보건복지부 지원도 받는다.
사실 ‘나는 절로’는 11년 전인 2012년부터 ‘만남 템플스테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장수 프로그램이다. ‘하트시그널’ ‘나는 솔로’ ‘환승연애’ 등이 흥행하기 한참 전부터 시작됐다. 이번이 벌써 37회째다. 묘장 스님은 “프로그램이 처음부터 인기 있었던 건 아니었다”면서 “온갖 홍보 방법을 동원해도 참가자 모집이 어려워 몰래 재단 직원을 넣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랬던 행사가 어떻게 갑자기 흥행하게 됐을까. 여느 브랜드의 리뉴얼 성공 방정식처럼 ‘나는 절로’도 모든 걸 뒤집었다. 2020년 코로나로 운영을 중단하다 지난해 3년 만에 재개하며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은 파격적인 시도를 했다. 이름부터 예능 프로 ‘나는 솔로’를 패러디하며, 템플스테이의 정적인 방식 대신 재미를 더했다.
첫날, 자기소개서 내용을 증명할 재직증명서·신분증 등 서류 제출을 시작으로, 본인 이름 대신 인기 아이돌이나 배우 이름을 가명으로 정한다. 이후 참가자들은 ‘저녁 공양 데이트권’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게임에 참여하고, 이기면 원하는 상대와 단둘이 식사를 할 수 있다. 고기와 술 대신 사찰 음식과 차를 앞에 두고 대화한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 절에선 오후 9시면 점등하는 게 보통이지만, 11시까지 불을 켜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도 열었다. 묘장스님은 “매 기수 참여자들에게 피드백을 받아 다음 행사에 적용한다”면서 “앞으로 전국에 있는 사찰과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진행이 가능할 만큼 노하우 전수에 힘을 쏟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종교 행사 오픈런…뉴진스님⋅꽃스님 불교계 인플루언서 총출동
또 다른 불교계 인플루언서인 ‘꽃스님’도 박람회장의 열기를 더했다. 꽃스님이라는 별명으로 3만명 넘는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를 자랑하는 지리산 화엄사 소속 범정스님은 ‘힙한 불교’를 주제로 발표했다. 이날 ‘자빠진 귀’ ‘깨닫다 티셔츠’ 등 굿즈를 사기 위한 긴 줄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군 복무 중인 스님들이 운영하는 카페 ‘스님의 빵앗간’도 큰 호응을 얻었다.
행사를 주최한 대한불교조계종은 이번 박람회 주제를 ‘재미있는 불교’로 정했다. 젊은 세대에게 불교에 대한 친숙함을 주기 위해서다. 덕분에 이번 박람회 참가자 80% 이상이 2030 세대였다. 박람회를 기획한 한 관계자는 “불교박람회가 올해 12번째 열리는데 젊은 사람이 이렇게 많이 모인 건 처음”이라고 했다.
사찰 음식으로 비건 먹거리…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다
따져 보면 불교계가 그동안 대중 소통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큰 관심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의외성’을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세속과 가장 거리가 멀어 보였던 불교가 힙한 콘텐트를 무기로 들고나오면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개의 키워드가 만나 훨씬 흥미로워 보이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불교에 대한 열기는 오는 10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리는 ‘연등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행사 마지막 날인 12일 저녁, 종로 공평사거리 한복판에선 뉴진스님이 주도하는 댄스파티도 즐길 수 있다. 오는 8월과 9월엔 대구⋅부산에서도 국제불교박람회가 열린다. 서울 외 지역에서 박람회를 여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조계종 관계자는 “박람회 인기를 확인하고 전국화를 시도 중이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