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최훈의 심리만화경

[최훈의 심리만화경] 해인이도 현우도 모두 슬펐던 것이다

중앙일보

입력 2024.05.01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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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 한림대 교수

한동안 주말에 새로운 루틴이 생겼었다. 와이프와 함께 드라마 ‘눈물의 여왕’ 보기. 이혼을 생각하던 부부인 해인과 현우. 그러나 해인이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된 후, 다시 사랑이 시작되는 이야기. 우리 부부가 함께 눈물을 흘리며 애청했었다.
 
환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결심할 만큼 사랑하던 두 사람이 서로 멀어지게 된 건 유산된 아기를 대하는 태도 때문이었다. 어느 날 퇴근한 현우는 아기의 물건이 모두 버려지는 모습을 보게 되고, 죽은 아기를 쉽게 버리는 것 같은 아내 해인의 태도에 실망한다. 말 그대로 오만 정이 다 떨어져 버린 상황. 하지만 해인도 슬프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 슬픔을 대하는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심리만화경

애도 이중과정모델에서는 상실로 인한 슬픔에 대처하는 2가지 방식을 이야기한다. 하나는 떠난 사람을 추억하거나,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떠난 사람과 관련된 정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를 상실지향적 대처라고 하는데, 떠난 아기의 물건을 계속 보면서 아기를 떠올리며 추억하고 싶었던 현우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방식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데 중점을 두는 방식으로, 이는 회복지향적 대처라고 한다. 슬픔을 떠올리게 하는 아기의 물건들을 치우고, 경영자의 위치로 빨리 복귀하고자 했던 해인의 방식과 유사하다.
 
우리는 이 2가지 방식을 번갈아 사용하며 슬픔에 대처한다. 아기의 물건을 모두 치워버린 해인이가, 초음파 사진은 끝까지 못 버린 것처럼, 1가지 방식으로만 슬픔을 대처하지 않는다. 하지만 타고난 성격과 현실적인 상황에 따라 주도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


어떤 방식으로 대처하든, 상실의 상황에서는 모두 아프고 슬프다. 나와 다른 대처 방식을 사용한다고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부부라면 슬픔과 그 슬픔을 대처하는 방식을 솔직히 서로에게 말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최훈 한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