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꼼한 기록광이었던 간송은 설계 의뢰시점부터 준공까지 공사 대금과 임금, 잡비 등 내역을 일종의 가계부인 『일기대장』에 남겼다. 박길룡건축사무소가 그린 설계도면도 받아서 보관했다. 별개로 남긴 지불명세서엔 보화각 등 설계감독비가 1500원이라고 적혀 있다. 당시 서울 시내 기왓집 한채값이 1000원 할 때다. 이들 문서는 보화각 수장고 한쪽에 잠들어 있다가 86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간송미술관이 다음달 1일부터 여는 ‘보화각 1938: 간송미술관 재개관전’(6월16일까지)을 통해서다.
29일 간송미술관은 언론공개회에서 “보화각 보수를 위해 모든 유물·자재를 신축 수장고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몰랐던 유물이 상당수 나왔다”며 “간송 컬렉션의 초기 형성과정을 연구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길룡의 설계도면은 오랫동안 접혀 있었고 뒷면은 누렇게 변했지만 보존처리를 거쳐 공개된 청사진 자체는 또렷했다.
간송이 1938년 전에 구입한 서화류 수십점도 처음 선보인다. 각각 ‘남나비’와 ‘고접(高蝶)’이라고 불렸던 조선 후기의 유명한 나비 그림 화가 남계우(1811~1888)와 고진승(1822~?)의 작품이 2층 전시실에 나란히 놓였다. 기록으로만 전해진 고진승의 나비 그림이 실물로 발견된 건 처음이다. 1930년 제9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작으로 당선된 노수현(1899~1978)의 ‘추협고촌(秋峽孤村)’도 처음 공개됐다.
앞서 간송미술관은 3대째 승계 과정에서 운영 부담 등의 문제로 국보·보물 불상을 일부 처분해 파문을 불렀다. 2021년엔 국보 훈민정음 해례본을 한정판 NFT(대체 불가 토큰)로 발행해 재정 난맥상에 대한 우려를 부르기도 했다.
전인건 관장은 “더는 컬렉션을 내놓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재확인하며 “할아버지(간송)가 지키고자 했던 ‘문화보국’을 현재 세대와 세태에 맞게 만들어가는 게 내 몫”이라고 말했다. 대구에 설립하는 간송미술관 분관에 관해선 “국비와 시비로 설립되는 미술관을 우리가 위탁운영하는, 일종의 구겐하임 빌바오 같은 모델”이라면서 “오는 9월쯤 첫 전시를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