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태생의 미술가 우고 론디노네(59)는 동시대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힌다. 회화, 드로잉, 조각,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을 넘나들며 작업하는데, 국내외 컬렉터들이 작품을 앞다퉈 찾을 만큼 인기가 높다.
그런데 그의 명성을 먼저 전해 듣고 작품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적잖이 당황할 듯하다. 작품이 놀랍도록 단순해 보이기 때문이다. 작은 캔버스에 일몰과 일출의 풍경을 그린 삼색 수채화 '매티턱'(mattituck·작가가 거주하는 지역 이름) 연작도 그중 하나다. 화면 가운데 수평선, 그 위에 그린 동그라미(때로는 반원)가 전부다. 거대한 돌기둥을 연상시키는 알록달록한 색상의 조각 작품 '수녀와 수도승'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는 시간의 흐름, 자연의 순환에 대한 성찰을 시적(詩的)인 감성으로 담아내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론디노네의 개인전 '번 투 샤인(BURN TO SHINE)'이 원주 뮤지엄 산(관장 안영주)에서 6일 개막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개인전으로 미술관 3개의 전시장과 백남준관, 야외 스톤가든에서 조각, 회화, 설치, 영상 등 40여 점의 작품을 보여준다.
뮤지엄 산, 론디노네 개인전
6일 개막해 9월 18일까지
원주 어린이와 협업 작품도
단순하지만 다채로운 세계
전시장에서 만난 론디노네는 "11마리 말에 '켈트해' '에게해' '황해' 등 각각 바다의 이름을 붙였다"며 "투명한 말의 형태를 빌어 흙, 물과 공기, 불 등 물질의 네 가지 원소를 다 담아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해가 뜨고 지는 풍경을 담은 수채화에 대해선 "4년 전 팬데믹이 기승을 부리던 시기, 롱아일랜드에 머물 때 그리기 시작했다"며 "매일 저녁 아름답게 해가 지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이것을 가장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작품 안엔 시간과 공간이 다 담겨 있다"며 "일몰을 보며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내 삶을 돌아보며 쓴 일기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왜 그는 수도승 조각을 만들까
그동안 백남준 작품이 설치됐던 백남준 관에는 4m 높이의 '노란색과 빨간색 수도승'이 성상(聖像)처럼 놓였다. 야외 스톤가든에는 3m 높이의 '수녀와 수도승' 조각 6점이 자리 잡았다. 그런데 왜 수도승일까. 그는 "수도승은 성찰하는 자의 상징"이라며 "그는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성찰을 하는 동시에 외부의 자연과 관계를 맺는 존재"라고 말했다. 이 조각은 겉보기엔 돌을 깎아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청동으로 제작됐다. 앞서 론디노네는 2013년 뉴욕 록펠러센터 광장에 거대한 석상 조각 '휴먼 네이처'를 설치하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원주의 3∼12세 어린이 1000명이 각각 해와 달을 주제로 그린 드로잉 2000장을 두 개의 전시장에서 선보인다. 전시가 열리는 지역 어린이들의 작품을 자신의 전시에 함께 보여주는 식으로 지속해온 그의 협업 프로젝트다. 그는 "미술관이 아이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공간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 지역 아이들이 편하게 와서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같이 즐기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이 곧 미래다. 아이들을 예술의 일부로 참여하게 한 이 작업이 무엇보다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의 전통 의식과 현대 무용을 결합한 퍼포먼스 영상 '번 투 샤인'(2022)도 선보였다. 일몰 시간에 시작해 해가 뜰 때까지 벌어지는 역동적인 춤과 소리를 통해 자연의 순환의 의미를 담은 작품이다.
"모든 것은 지고 다시 태어난다"
그는 또 "명상(meditation)이라는 게 꼭 바닷가에 나가서 자연을 바라봐야 하는 건 아니다. 매일 창밖을 바라보거나 산책을 하며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을 보고 느끼는 것이 명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연을 보면 우리가 가진 아름다움이 얼마나 큰지, 이 자연을 볼 수 있어 얼마나 행운인지 느낄 수밖에 없다. 제 작품을 통해 이런 세상의 아름다움에 빛을 더 비추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는 9월 18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