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인 듯 웃으며 얘기했지만, 키위 당도는 이곳 농가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뉴질랜드 2800여 개 키위 재배 농가들의 기업형 협동조합인 제스프리가 수확 직전 농가별로 키위의 당도와 경도, 수분 함유량 등을 검사해 합격선을 넘겨야만 ‘수확 가능’ 통보를 하기 때문이다.
“‘수확 테스트’ 16번 떨어진 농가도”
기상 이변 등으로 과일 생산성 향상과 품질 혁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키위 시장의 30%를 점유하는 제스프리의 품질 혁신을 위한 노력에 눈이 간 이유다. 제스프리는 농장에 엄격한 품질을 요구하는 대신 품종 개발을 지원한다. 로데릭씨는 썬골드키위와 그린키위, 루비레드키위를 각각 9만5000㎡, 6만㎡, 5000㎡ 규모로 재배 중인데, 이 가운데 썬골드키위와 루비레드키위는 제스프리가 10년 넘는 연구·개발(R&D)로 유전자 변형 없이 품종 간 자연 교배로만 개발한 품종이다. “여러 품종을 재배하니 병충해에 따른 리스크가 분산돼 안정적 수입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로데릭씨의 설명이다.
매출총이익의 약 5%에 달하는 연간 3200만 뉴질랜드 달러(262억원)를 R&D 예산으로 투자하는 제스프리 특유의 혁신 문화는 2010년 ‘키위 궤양병’(PSA) 사태 때 빛을 봤다. 세균 감염에서 비롯되는 키위 궤양병으로 당시 주력 품종이던 그린키위가 전멸되다시피 했는데, 저항력이 강한 썬골드키위 보급을 시작하면서 생산량을 채울 수 있었다.
이에 다수 농가가 그린키위 기둥에 썬골드키위 묘목을 접붙이는 방식으로 품종 변화를 시도했고, 지금은 뉴질랜드 전체 키위 재배품종의 56%를 썬골드키위가 차지한다. 워렌 영 제스프리 이머징마켓매니저는 “썬골드키위는 재배 면적당 생산량도 많아 농가 수익 개선에 큰 도움이 됐다”고 귀띔했다.
생산지 다각화로 균등한 품질 유지
국내에서는 제주도에서 지난해 기준 288개 농가가 제스프리 썬골드키위를 생산하고 있다. 4월 말부터 11월까지 뉴질랜드산 키위를 시장에 내놓고, 12월부터 이듬해 4월 초까지는 제주산 키위를 공급하는 방식이다. “글로벌 공급망 구축으로 전 세계 어디에서나 1년 내내 고품질의 키위를 먹을 수 있다”고 제스프리 측은 설명했다.
수출 선박 역시 키위 맞춤형이다. 약 1만㎞를 항해하는 동안 실시간으로 선박 내 온도를 측정하면서 후숙 과정을 관리한다. 수확 시점엔 8브릭스 당도를 보인 썬골드키위가 한 달 뒤 한국 시장에 진열될 때는 16~17브릭스 수준으로 단맛이 강해지는 이유다.
농장주 로데릭씨는 “장담컨대 한국에서 먹는 키위가 이곳에서 먹는 것보다 맛있을 것”이라며 “누군가 키위를 먹어줘야 우리의 일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건 소비자의 만족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