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병기 ‘필향만리’

[김병기 ‘필향만리’] 三月不知肉味(삼월부지육미)

중앙일보

입력 2024.04.15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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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지난해 8월 24일자 ‘필향만리’에서 공자가 순임금 시대의 음악 ‘소(韶)’에 대하여 “진미진선(盡美盡善)한 음악”이라고 평했음을 말했었다. 그런데, 공자는 ‘소(韶)’에 대해 “음악이 이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다”며 “감동한 나머지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느끼지 못했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여기서 절대적 매혹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삼월부지육미(三月不知肉味)’라는 말이 나왔다.
 

知:알지, 肉:고기 육, 味:맛 미.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느끼지 못했다. 23x66㎝.

중앙일보 김호정 기자는 중앙일보 프리미엄 디지털 구독 서비스 코너인 ‘더 클래식’에서 “임윤찬의 쇼팽은 ‘음표’보다는 ‘음표 사이의 시간’에 대한 연주에 가깝다”고 평했다. 또 정경화 바이올린 연주의 ‘땅’이 아니라 ‘따앙’하는 것처럼 들리는 매력적 시그니처에 대해 “정확하고 무뚝뚝하게 무찌르는 게 아니라…”라는 설명을 붙였다. 서예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이 적실한 표현을 나는 애썼지만 찾지 못했기에 김호정 기자의 이 표현에 크게 공감했다.
 
‘소(韶)’도 ‘사이’를 연주하는, ‘무찌름’ 없는 음악이었을 것이다. “지악무성(至樂無聲)”, “지극한 음악은 소리가 없다”는 말이 있다. ‘사이’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정확을 목표로 무찌를수록 불필요한 소리가 크다. 정경화, 임윤찬 등 우리 음악가들로 인해 이 세계에 ‘소(韶)’를 듣던 순임금 시대의 평화가 왔으면 좋겠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