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경찰서 수사 착수
13일 진안군 등에 따르면 진안에서 가든형 식당을 운영하는 A씨(60대)는 지난 5일 B씨 등 4명을 사기 혐의로 진안경찰서에 고소했다. "B씨 등이 군 장병 음식을 포장해 가겠다고 한 뒤 '후식용 과일을 주문해 주면 나중에 음식값과 함께 계산하겠다'고 속이고 수백만원을 챙겨 종적을 감췄다"는 게 A씨 주장이다.
고소장 등에 따르면 B씨가 A씨 음식점에 전화한 건 지난 4일이다. 본인을 전북 방어를 책임지는 육군 제35보병사단(이하 35사단) 소속 모 부대 행정보급관이라고 소개했다. A씨는 "목소리에 군기가 바짝 들었고, 완전히 군대식 말투였다"고 했다.
B씨는 "훈련 중인 장병 50명이 부대에서 먹을 수 있게 6일(토요일) 오후 7시까지 포장해 달라"며 6만4000원짜리 닭백숙 15마리, 96만원어치를 주문했다.
가짜 부대 공문·납품확인서 보내
수상한 낌새가 든 건 그다음이었다. B씨는 "기왕 장병 식사를 준비한 김에 과일 준비까지 도와주시면 감사하겠다. 전에 계약한 업소에선 그렇게 해줬다"고 부탁했다. B씨는 "요즘 과일값이 비싸 농장과 직거래하는데 농장에서 전화가 오면 그쪽에서 해달라는 대로 해주면 된다"고 했다.
통화가 끝나자 '충북 충주에 있는 과수원 대표' 전화를 받았다. 고향이 순창이라는 이 남성은 전라도 사투리로 "부대하고 새로 계약하셨다고 하더만요. 주문이 들어왔네요. 전라북도예요? 워메, 우리 고향 저기(사람) 만나셨네"라고 친근감을 표시했다. 이어 "이 부대와 3년간 거래했는데 돈이 참 잘 나온다. 계약 잘하셨다"며 "B씨 부대 장병이 한 달간 먹을 분량인데, 10㎏에 10만3000원인 배 30상자 대금 309만원을 보내면 납품하겠다"고 했다.
깜짝 놀란 A씨는 B씨에게 전화해 "이게 뭐냐. 금액이 커 부담된다"고 했다. 그러자 B씨는 "결재 서류에 (배값을 치렀다는) 영수증이 들어가야 대대장이 사인하고 돈이 나온다"며 "A씨 계좌 번호를 알려주면, 과일 대금은 닭백숙값과 함께 오후 2시 안에 현금을 인출해 계좌로 넣어 주겠다"고 했다. 그래도 망설이자 B씨는 "사장님이 걱정하시는 부분은 저희가 부대 이름을 걸고서, 제 직급을 걸고서 약속드리겠다. 중사 ○○○다"라고 했고, A씨는 그 말을 믿었다.
이후 일은 일사천리였다. A씨는 '과수원 대표'가 시키는 대로 '과수원 대표' 아내 계좌에 309만원을 송금했다. '과수원 대표' 아들은 A씨에게 카톡으로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영수증 발행해서 보내드릴게요"라며 배 주문 내용이 담긴 '납품확인서'를 보냈다.
35사단 "문서 정보 허위…가상 인물"
이에 대해 35사단 측은 "(B씨가 제시한) 문서에 적힌 정보는 모두 허위이고, 실제 근무하는 인물도 아니다"고 했다. A씨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음식점이 도로변에 있다 보니 군인이 행군하거나 군용 차량이 이동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며 "검찰·경찰·법원 등을 사칭하는 보이스피싱은 들어봤지만, 설마 군인이 사기를 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군 간부를 사칭한 단체 예약이 잇따랐다. "군인 덕에 먹고 산다"는 임실이 대표적이다. 35사단은 2014년 1월 전주에서 임실로 둥지를 옮겼다.
임실·고창·남원 등 11건 의심 신고
한국외식업중앙회 등에 따르면 현재까지 의심 신고는 진안·임실·고창·남원 등에서 모두 11건 접수됐다. 메뉴는 감자탕·아귀탕 등 다양하다. A씨 외에 260만원가량 피해를 본 식당도 있다고 한다. 경찰은 동일범 소행으로 보고 피해자가 더 있는지 조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