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미술관 포함)이란 데가 고루한 유물만 갖다놨으면 진작에 외면 받았다.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객이 418만명으로 세계 6위를 기록한 것은 대중성을 고려한 기획 뿐 아니라 첨단 기술을 적절히 접목한 전시기법의 힘도 크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기획을 가져다가 전시한 ‘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이야기’(4월14일까지)는 애니메이션을 곁들인 유물 해설로 오히려 뉴욕에서보다 상세히 내용을 알 수 있다는 호평이 줄을 이었다. 정명희 전시과장은 “수천년 전 종교적 서사를 영상세대가 친숙히 이해할 수 있게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첨단 기술 덕에 유물을 만나는 방법도 다채로워지고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작은 금강, 칠보산을 거닐다’(5월26일까지)는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이 소장 중인 19세기 조선 병풍을 생생한 실감영상으로 즐길 수 있게 한다. 덕분에 북녘 땅에 있어 갈 수 없는 함북의 명산 칠보산, 미국 땅에 있어 직접 만날 수 없는 실경산수 유물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 21세기 우리 국력이 가능하게 한, 시공간을 뛰어넘는 ‘디지털 연결’의 힘이다.
값지고 귀한 것을 만들어내는 건 시대의 역량이지만 이전 세대가 물려준 것에 부가가치를 보태는 것도 오늘날의 몫이다. 국내 서화류 보존처리 1인자로 꼽히는 박지선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 대표는 자신이 하는 일이 “물려받은 것에 내가 알게 된 걸 쌓아서 같이 가는 것”이라고 했다. 덕분에 빛바랜 것이 원래 색을 찾고, 찢어지고 흩어진 게 제꼴을 갖춘다. 디지털과 영상의 힘이 거기에 새로움을 더한다. 고루한 것은 살아남지 못한다. 유물도 그러한데 사람과 정치는 오죽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