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0월 16일,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당시 나이 80세이던 미국 국민화가 앤드루 와이어스(1917~2009)는 그렇게 자신의 작품 238점을 스사키 카쓰시게(須崎勝茂·73) 마루누마 예술의 숲 대표에게 건넸다.
25살 나이, 큰아버지 회사를 물려받으면서 뛰어든 창고 임대사업. 회사는 일본의 고도성장기와 함께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일에만 빠져있던 그에게 어느 날 조부가 한 마디 던졌다. “돈이 얼마가 있든 취미가 없는 인생은 쓸쓸하다.” 서른살, 그가 도전한 취미는 도예였다. 동경예술대 학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뜻하지 않게 예술가를 꿈꾸는 학생들의 척박한 환경에 귀 기울이게 됐다. ‘학교를 졸업해도 작업실도, 돈도 없으니 꿈을 이루기 어렵다’는 거였다.
스사키는 그 길로 집 근처 대밭을 갈아엎었다. 그리고 1985년 가난한 예술가들을 위한 작업실을 세웠다. 마루누마 예술의 숲 레지던스의 시작이었다. 무명의 젊은 작가들을 이곳에 불러와 작업공간 제공은 물론, 재료비 지원, 전시회 지원을 하기를 올해로 40년. ‘아시아의 앤디 워홀’로 불리는 팝아트 작가 무라카미 타카시도 20년간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한 것이 알려지면서 인구 14만여 명의 작은 도시 아사카시의 마루누마는 젊은 작가들 사이에선 꼭 한 번 가고 싶은 곳이 됐다. 8년 전부턴 한해 3명씩 한국 젊은 예술가를 초대하면서 한국 작가들의 발길마저 이어지고 있다. 전시회에서 만난 스사키 대표는 “취미로 인해 세상이 넓어졌고, 이젠 예술가를 키워내는 것이 내 취미가 됐다”며 활짝 웃었다. 평소 유니클로를 입고 다니면서도 반평생 낯선 예술가들을 선뜻 후원해온 아름다운 ‘취미’를 가진 이를, 우리 사회에서도 볼 날이 오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