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뒤인 지난 10일(현지시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당시 아베의 방미 성과를 뛰어넘었다. 미국의 축복과 지지 속에 사실상 ‘개헌 없는 보통국가화’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승자’가 ‘패자’의 재무장을 허용한 것은 전후 질서 측면에서도 큰 변화다.
‘피해자’인 한국 입장에서는 경계할 수밖에 없다. 다만 9년 전 같은 비판과 우려 일색의 분위기는 아니다. 북핵 위협 대응 등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할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일본이 평화헌법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도록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의 길을 터준 셈인데, 주요 명분은 중국 견제다. 이번 미·일 정상 간 공동성명에는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중국의 현상 변경 시도에 반대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한몸’ 된 미·일 군사안보 협력, 득? 실?
이는 한국을 둘러싼 정세가 ‘복합 위기’ 국면을 맞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을 동원한 “남조선 전영토 평정”을 위협하고, 러시아는 북한과 불법적 군사 협력을 통해 이런 김정은의 핵 야욕을 부추기고 있다. 미·중 대결과 맞물린 대만 해협 갈등도 한반도 안보와 직결되는 위기 상황이다. “북한이 거의 핵무장을 완성하고, 대만 해협 관련 유사 상황도 대비해야 하는 가운데 한·미·일 안보 협력이 원활하지 않으면 제대로 억지를 할 수 없는 상황”(신각수 전 주일 대사)이라는 것이다.
미·일 군사 안보 협력 강화는 지난해 8월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를 통해 구축한 3국 간 안보 협력의 한 축이 견고해지는 것으로 볼 필요도 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에 대한 위협은 동맹인 미국에 대한 위협이기도 하기 때문에 일본의 군사력 강화가 곧 우리에게 위협이라는 인식은 논리적인 모순”이라며 "한·미 및 미·일 동맹이 진전되면서 한·미·일 차원에서도 북한 대응과 관련한 안보 논의의 지평 자체가 확장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한·미는 이미 ‘글로벌 전략동맹’ 선언
하지만 지금은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3자변제 해법 제시 등으로 한·일 관계가 점차 좋아지는 국면이고, 한·미 동맹 역시 훨씬 공고해졌다. 이와 관련, 미 측은 이번 미·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일 동맹이 전면적인 글로벌 파트너로 중대 전환했다”고 강조했는데, 사실 한·미는 이미 지난해 4월 동맹 70주년 정상회담에서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을 선언했다.
당시 발표한 워싱턴 선언을 근거로 발족한 핵협의그룹(NCG)은 미국의 핵자산 운용에서 한국의 발언권을 제도화하기 위한 협의체로, 전례가 드물다는 평가를 받았다. 북핵 대응을 위해 한·미가 한몸처럼 움직이는 일체형 확장억제를 지향한다.
日 ‘군사 야욕’ 경계 불가피
실제 11일(현지시간) 진행되는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기시다는 과거사 관련 언급은 아예 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한다. 기시다 정부가 징용 해법에 대한 적극적 호응을 비롯, 과거사 문제에서 전향적 태도를 보여 신뢰를 쌓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이 당사자인 북한 문제와 관련, ‘일본식 통미봉남’에 대한 걱정도 제기된다. 바이든은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북·일 정상회담에 대해 논의했으며, 동맹들이 북한과 대화를 시작할 기회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북·일 정상회담 추진에 대한 첫 지지 표명이었다.
이를 두고 정작 한국만 북·일 간 고위급 소통과 관련해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모양새란 지적이 나온다. 북·일 정상회담 가능성과 관련, 정부는 “한·일, 한·미·일은 일·북 간 대화 추진 관련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일은 이미 정상 차원에서 북·일 정상회담 추진과 관련한 세부 사항을 공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