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도시건축전시관 도서관에 국내 건축 관련 전문가 60여 명이 모였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을 설계한 우규승 씨를 비롯해 최두남 서울대 명예교수, 민현식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장, 김미현 목천김정식문화재단이사장, 전봉희 서울대 교수 등이 참석했다. 김태수 해외건축여행 장학제(이하 '김태수 장학제')의 30주년 기념집 『포트폴리오와 여행』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이 행사의 시발점을 마련한 재미 건축가 김태수(87) 씨도 8년 만에 한국을 찾아 자리를 함께했다.
김씨는 30여 년 전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장학재단(T. S. Kim Architectural Fellowship Foundation)을 설립한 주인공. 과천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 관훈동 금호미술관, 천안 교보생명 연수원 등이 그의 설계로 지어졌다. 그가 한국 건축계 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다며 젊은 건축인의 해외여행을 지원하기 시작한 일이 서른 해를 넘기고, 수상자 30인의 포트폴리오와 여행기를 담은 책이 최근 출간됐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설계 김태수 건축가
김태수장학재단 젊은 건축인 해외여행 지원
30년 기록 담아 『포트폴리오와 여행』 출간
- 당시 장학재단을 만든 이유는.
- 고국에 늘 빚진 마음이 있었다. 대학 때부터 한국 건축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자고 생각했는데, 1961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뒤 미국에서 줄곧 활동해왔다. 1980년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을 설계하고, 1990년대 서울 사무실을 열며 한국을 자주 오갔는데 작게나마 도움이 될 일을 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다.
장학생은 해외 유학을 다녀오지 않은 건축계 실무자 중에서 포트폴리오를 심사해 뽑았다. 1992년 첫 수상자를 뽑은 이래 지난해까지 32명에게 주어졌다. 처음엔 미화 8000달러를 수여하는 것으로 시작했으나 몇 차례에 걸쳐 액수를 늘려왔으며, 2022년 우규승 건축가가 10만 달러를 기증하면서 1만7000달러를 수여하고 있다.
- 포트폴리오로 뽑은 이유는.
- 포트폴리오와 2차 면접을 거쳐 뽑았다. 특히 포트폴리오는 단순한 작품집이 아니라 건축가의 모든 비전과 상상과 아이디어를 담은 한 권의 책으로, 건축가에겐 최고의 재산이다. 포트폴리오 없는 건축가는 상상할 수 없다.
한편 이 장학제는 학연 등에 얽매이지 않고 공정하게 심사하는 게 중요한 기준이었다. 서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이 기념집에 "30년의 세월을 버틴 공정성이 이 상의 가치를 만들었다, 성별과 학력에 의한 선입견을 붕괴하는 변화 앞에 이 장학제가 있었다"고 썼다.
- 왜 여행 장학금인가.
- 미국에서 경험해보니 건축 대학에서 여행 장학금을 상으로 수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한국에서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될 무렵이었고. 건축가에게 여행은 정말 중요하다. 건축은 이미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가 보고 경험해야 한다.
2016년 자신의 회고전이 열린 이후 처음으로 과천 미술관을 찾은 그는 "산중에 있는 사찰처럼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지게 하는 게 당시 설계의 핵심이었다"며 "건물이 잘 나이 들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김태수 장학재단은 국내에서 진행한 해외건축여행 장학제 외에도 서울대 건축과 설계 스튜디오(방문 교수)와 미국 예일대 건축과, 미 하트포드대 건축과 졸업생에게도 여행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김씨는 "그동안 선정된 30여 명 중 15명의 건축가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며 "건축 일을 계속하지 않는 분도 있다. 하지만 그분들이 젊었을 때 받은 건축 교육과 건축 여행 경험이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믿는다. 그게 우리 모두의 역사이며 자산"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