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한국의 유일한 동맹국이다. 한국인들은 71주년을 맞은 한·미 동맹 앞에 자연스럽게 ‘철통같은(iron clad)’이란 말을 붙인다. 그러면서 동맹은 당연하다고 믿는다. 시민들이 매일 지나다니는 로아노크 사거리처럼 말이다.
트럼프는 세 차례 김정은을 만났지만 실패했다. 그럼에도 그를 잘 아는 인사들은 트럼프 재집권 시 김정은과의 협상이 재개될 거라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트럼프의 새 설계도에선 ‘운전자’를 자처했던 한국의 역할이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한반도 핵 정책을 총괄했던 리처드 롤리스 전 국방부 아시아·태평양안보담당 부차관은 “한국은 참관자(observer)로 협상장 옆자리(side saddle)에 앉게 될 것”이라며 “한국의 발언권은 있겠지만, 거부권을 행사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북한 주민에게 김정은과 뭘 합의하려는지 말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북한 주민도 그런 이상주의를 믿지 않는다”고 했다.
과거 대북 선제공격을 주장한 적이 있는 볼턴에게 “그럼 전쟁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즉답을 피했다. 대신 “북한 주민에 적대감을 추구하지 않고 정권을 압박해야 하는데, (한국 정부가) 제재를 위반하는 중국과 러시아를 방치해 왔다”고 답했다.
2012년 원주시는 주민 조사를 통해 자매결연의 상징이던 ‘로아노크 광장’을 폐쇄했다. “자매도시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주민 상당수는 광장의 존재 자체도 모른다고 답했다. 어느 순간 모든 것이 공기처럼 당연해진 결과다. 그러나 외교에서 당연한 것은 없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한반도를 둘러싼 공기가 완전히 달라진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