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세조종·다단계팀 운영하는 등 주식시장 주가조작 세력과 닮아
출생연도 따라 친목회 만들어 서로 일감 주고 수사 동향 교류도
한때 이씨의 조직원으로 일했다는 내부자를 수소문했다. 그는 “몇 주 전 A코인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남성 몇 명이 사무실을 급습해 난동을 피운 것으로 안다. 그중에는 전국구 출신도 있어서 이씨가 시끄러워질 것을 우려해 해외로 도피했다”고 전했다. A코인은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다. 일부는 수사기관에 고소장과 진정서를 냈지만 관련자가 구속됐다는 소식은 없었다. 그렇게 사건이 수면 아래 묻힌 채 1년이 지났다. 이런 상황에서 난동을 부렸다면 피해자를 대리하는 누군가가 분통이 터져 사적인 복수를 시도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씨는 평소 유튜브에서 자신을 1000억원대 자산가로 홍보해왔다. 하지만 이미 유튜브 채널 영상은 모두 비공개 처리돼 있었고, 계정마저 삭제된 뒤였다. 그나마 남은 것은 2017년 통신기기로 다단계 사기를 벌일 당시 모 인터넷 매체와 인터뷰한 광고 기사뿐이었다.
사기 코인의 핵심은 시세조종과 다단계
코인 발행업체는 이 같은 시세조종팀과 함께 TM(텔레마케팅·다단계)팀을 운영한다. 코인의 시세를 끌어올려 줄 개인투자자들을 끌어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첫 투자자가 코인을 20원에 사서 25원에 판다. 이후 두 번째 투자자가 이 가격에 구매한 뒤 30원에 털면 코인의 시세가 점차 오르게 된다. 거래량과 가격의 동반 상승은 또 다른 투자자를 유인하는 핵심이다. 최종적으로 업체는 고가에 보유 물량을 매도함으로써 거액을 끌어모으게 된다.
이씨는 이러한 수법으로 상당한 수익을 거뒀으며, 이윽고 업체를 차릴 만큼 전주(錢主)로 거듭났다고 한다. 이 시기 조직계에 있던 한모(30) 씨를 동업자로 영입해 시세조종팀과 다단계팀 운영 전권을 맡긴 것으로 전해진다. 기자에게 내부 사정을 알려준 모 인사는 “과거에 이씨가 시세조종을 벌인 사기 코인만 10여 개에 달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A코인을 내놓더니 본인이 주도해서 본격적으로 사기를 쳤다”고 전했다. 문제의 코인 차트를 확인하니 2022년 수백 배 급등한 뒤 가파르게 하락한 기록이 있었다. 가격이 고점에 올랐을 때 이를 매도하는 ‘물량 털기’를 한 것이다. 해당 코인은 2022년 말 거래소로부터 부정거래가 의심된다며 상장폐지됐다.
코인 사기범 이씨의 사례는 우리 사회를 잠식 중인 코인 사기 범죄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2017년 비트코인 광풍이 불어닥친 뒤 국내 코인 시장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23년 기준으로 유통되고 있는 가상자산만 총 622종으로, 시가총액은 28조원에 달한다. 문제는 이 가운데 상당수가 작전세력에 의한 코인이라는 점이다. 코인시장에서는 10분마다 정체가 불분명한 코인이 한 개씩 생겨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검찰은 ‘사기 코인’을 가리켜 실체가 불분명한 사업을 기반으로 사기 범행을 위해 발행한 코인이라고 지칭한 바 있다. 여기서 대표적인 유형은 비상장 코인 사기다. 이러한 사기 세력은 다단계팀을 통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무작위로 문자를 전송한다. 아직 상장되지 않은 코인을 소개하고 “사전 구매가 가능하다. 상장되면 가격이 몇 배가 오른다고 장담한다”는 내용으로 피해자들을 유인한다. 미심쩍어하는 투자자에겐 ‘원금 보장’까지 약속한다.
이 코인 사기 세력들은 자신들의 코인이 상당한 사업적 가치가 있기 때문에 상장은 떼어놓은 당상인 것처럼 포장한다. 예컨대 ‘청담동 주식부자’라는 별명을 가진 경제사범 이희진(38) 씨 등은 출소 후 코인 사기를 벌이다 지난해 10월 기소됐다. 그의 세력은 반려동물·중고차 매매·미술품 조각투자 등을 주요 콘셉트로 내세운 바 있다. 예컨대 주식시장에 비유하자면, 2차전지 산업을 주도할 유망 기업이라며 이 기업의 주식을 사라고 권유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비상장 코인 사기의 경우 실상은 개발이 전혀 진행되지 않은 허위 정보가 대다수다. 한 코인 투자자는 “세상 어딜 가든 똑같다. 자신의 계획을 실제로 해내면 사업가고 안 하면 사기꾼이다. 그런데 계획 자체가 속 빈 강정이라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 명확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사기 코인 성행은 거래소와 이해관계 일치 때문
이러한 비상장 코인 사기가 근절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상장 심사가 비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통상 코인 발행업체들은 코인의 사업적 가치가 담긴 홈페이지와 코인과 연동되는 플랫폼이 완성되면 이를 거래소에 제출한다. 최종 상장까지는 짧게는 3주, 길게는 1년이 걸리는데, 이 시기에 다단계팀은 반드시 상장될 거라며 투자자들을 ‘희망고문’하며 더 적극적인 투자를 유치한다. 하지만 거래소 상장 심사는 깜깜이로 진행되는 탓에 상장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투자자들로서는 알 길이 없다.
일각에서는 불나방처럼 거래소로 달려드는 사기 코인을 거래소가 외려 환영한다는 지적도 있다. 거래소의 주된 수입원은 코인 거래 수수료(평균 0.15%)다. 거래소에 최대한 많은 코인을 상장할수록 수익이 올라가는 구조다. 결국 사기 코인이 활개치는 것은 거래소와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업체로부터 특정 코인을 상장해 달라는 청탁을 받고 거래소 측에다 뒷돈을 넘기는 브로커들도 있다. 이러한 뒷돈을 상장피(fee)라고 하는데, 업계에서는 이를 공식적으로 부인해왔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해 3월 상장 브로커 고모씨를 구속기소하면서 상장피의 존재를 밝혀낸 바 있다. 검찰 수사 결과, 29개 코인에 대한 상장 대가로 거래소 코인원에서 상장 업무를 총괄하던 전모 이사와 상장 실무 책임자인 김모 팀장에게 약 9억3000만원을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오직 상장을 위해 검증되지 않은 온라인 사설 거래소와 거래해 표면상으로 상장 코인이라고 홍보하는 업체도 있다. 이러한 온라인 사설 거래소는 코인을 통한 도박판이나 다름없는 곳으로 인식된다. 코인 투자자는 “4000만원이면 상장되는 최하급 거래소”라고 밝혔다.
자본 들지 않는 코인 사기 주축은 20·30세대
실제 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제보자 상당수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에 포진돼 있었다. 국내에 사기 코인 행태가 언론에 전격 보도되기 시작한 시기는 2017년경이다. 이들 대다수는 비실명 보도를 전제로 자신들이 4~5년 전부터 사기 코인 범죄를 벌여왔음을 털어놨다. 사실상 금융범죄의 세대교체가 이뤄진 것이다.
이들의 특징은 태어난 연도로 일종의 친목회를 구성한다는 점이다. 기성 조직과 달리 특정 계보를 따라 조직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친목회를 통해 정보를 교류하고 서로 일감을 주면서 상부상조한다. 그래서 한 다리를 건너면 서로 다 아는 사이다. 코인 사기를 중심으로 각종 금융 범죄에 능하다는 것도 이들의 특징이다. 이른바 ‘롤스로이스남’ 신모(29) 씨 사태를 계기로 세간에 그 존재가 알려진 1995년생 친목회 ‘MT5’의 명칭은 가상화폐 거래 플랫폼 ‘메타 트레이더’(Meta Trader)에서 따왔다. 이제는 30대 중후반에 접어들면서 조폭계의 중진으로 자리한 1988년생 모임 ‘한양회’와는 명칭부터가 다르다.
기자가 만난 이모(29) 씨는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긴장한 순간을 가리켜 MT5가 언론에 노출됐을 때라고 털어놨다. 수사기관이 자신들의 범행을 첩보로 만들어 내사 중이라는 사실을 전해 들었을 때도 그만큼 촉각을 곤두세운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전체 세대 모임을 통틀어 가장 잘나가는 인사는 박모(30) 씨다. 서울 송파 시그니엘에 거주하며 수억원대 외제차 몇 대를 굴린다. 전국 ‘불법쟁이’들의 꿈이다. 한때 유흥업계 종사자인 정모 씨한테 지원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그런데 신씨 사건이 터진 뒤 평소 리스로 끌고 다니던 외제차를 다 정리하고 웬만하면 집 밖에서 나오지 말라는 지침이 떨어졌다. 그런 식의 하달 구조는 이전에 없었다. 재판에서 실형을 받는 것보다 범행이 발각돼 앞으로의 돈줄이 끊어질 거라는 박씨의 우려 때문이었다.”
이날 이씨는 이들의 네트워크가 대단해 수사기관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다고도 자신했다. 부장검사 출신의 전관 변호사들이 포진된 법무법인을 실소유한 장본인이 박씨로, 그가 관련된 모든 불법 행위를 탈색하는 세탁소로 겸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씨는 “강 국장이라는 브로커가 정·관계 로비는 물론 수사기관에도 적잖은 돈을 바르며 동향을 빼오는 거로 안다”고 전했다.
이씨는 최근 코인이 돈이 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범죄자금을 세탁하는 방식도 변화하고 있다고 했다. 전통적인 돈세탁은 범죄조직이 프랜차이즈 가게나 법인을 몇 개 차린 뒤 카드를 긁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세금 등 15%가량이 빠져나가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한 범죄자금을 현금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범죄조직이 문어발식으로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창업해 보유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코인은 그보다 훨씬 간단하다. 그는 “코인으로 확보한 범죄자금과 그만큼의 현금을 보유한 돈세탁 업자에게 약 4%를 떼주고 교환하면 끝”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테더 코인’은 미 달러와 일 대 일 등가교환이 되는 만큼 시세 변동과 관계가 없어서 최근 코인 세탁에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다고 했다.
“경찰서장이 우정 과시하는 동남아는 도피 천국”
“동남아에선 어느 정도 재산만 보유하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다. 특히 한국인 범죄자들이 많다 보니까 사업을 차릴 때 오히려 서로 교류하는 편이다.” 실제 동남아 도피 경험이 있는 한 취재원의 말이다. 그는 “무엇보다 동남아는 권리금 개념이 없다. 월세만 다달이 지급하면 건물 전체를 빌릴 수도 있다. 한국인 범죄자들이 주로 운영하는 건 KTV(코리안가라오케)다. 한 번 인사를 갔는데 코인 사기로 국내에서 난리가 났던 모 인사가 대표랍시고 나와서 놀란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특히 동남아는 외국인 관광객이 절반 이상이어서 유흥업에 불경기가 없다는 후문이다.
그에 따르면 동남아 중에서도 필리핀이 가장 범죄자가 살기 편하다고 한다. 경호를 위해 총기를 소지한 보안요원에 주는 일당이 겨우 우리 돈 6000원 수준이다. “필리핀의 마닐라·앙헬레스·일로일로 등에 주로 거점을 둔다. 지역 경찰서장에게 매달 150만원만 써도 자택에 경찰관들을 데려와서 우정을 과시하는 동네들이다. 향수병에만 젖지 않으면 도피자들에겐 천국이다.” 어른들의 주가 조작 범죄를 닮아가는 코인 사기는 우리 사회 젊은이들을 울리는 큰 병폐가 되어가고 있다. 수사기관이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