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조력 사망을 하겠다는데 법원이 막아 달라.”
“가톨릭 의료기관에까지 조력 사망을 제공하라는 건 종교 자유 침해다.”
의료 전문가의 동의 하에 환자가 약물을 투약하는 등의 방법으로 죽음을 맞는 ‘조력 사망(assisted dying)’을 둘러싸고 세계 각국에서 빚어지고 있는 소송들의 일부다. 현재 스위스·캐나다 등 10여 개 국가, 미국 내 캘리포니아 등 10개 주에서 ‘참을 수 없는 고통’ · ‘말기 불치병 진단’ 등의 기준을 세워 조력 사망을 법제화한 상태다. 프랑스·영국도 최근 법제화를 검토하고 있다.
이렇게 조력 사망이 확대되면서 법률적·사회적 논란도 거세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으로 연명의료를 거부할 권리를 도입한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지적했다. 각국에서 벌어진 소송의 핵심 쟁점을 살펴봤다.
①가족 개입 가능한가
이를 두고 가디언은 “한 사람이 죽음을 결정했을 때 가족 구성원이 개입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를 강조하는 소송”이라고 평했다.
이후 지난달 31일 캐나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담당 판사는 조력 사망 희망자의 자기 결정권이 A씨가 딸을 잃게 될 피해보다 중요하다며 딸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A가 항소할지 결정할 수 있도록 판결을 30일 동안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캐나다에선 2016년 임종 관련 의료지원법(MAID) 도입 이후 회복 불가능한 신체 질환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성인은 의사 두 명의 확인과 동의 절차를 거쳐 의사에게 처방받은 독극물을 직접 주입하거나, 의사에게 주입 받는 방식으로 생을 마감할 수 있다.
②종교 자유 침해?
크리스찬 레핀 대주교는 “완화의료 시설도, 도덕적으로 반대하는 서비스 제공을 거부할 수 있는 의료인과 동일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후 담당 판사는 “의사 조력 사망을 포함해 원하는 의료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 퀘벡 주민의 권리가 종교의 자유 침해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결했다.
☞조력 사망, 안락사란
국가 마다 개념이 조금씩 다르나 보통 ‘조력 사망’(Assisted dying, assisted death, aid in dying)은 환자가 의사에게 처방 받은 약물을 투약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를 뜻한다. ‘조력 자살’(assisted suicide)로도 불린다.
‘안락사’(euthanasia)는 의사가 환자에게 약물을 직접 주입하는 경우를 가리킬 때가 많다. 안락사를 조력 사망으로 부르는 국가도 많다. 소극적 안락사는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 영양 공급 등 생명 유지에 필요한 치료를 중단해 생을 마치게 하는 것이다. 반면 적극적 안락사는 의사가 환자에게 직접 치명적인 약물을 주입해 죽음에 이르게 한다.
‘안락사’(euthanasia)는 의사가 환자에게 약물을 직접 주입하는 경우를 가리킬 때가 많다. 안락사를 조력 사망으로 부르는 국가도 많다. 소극적 안락사는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 영양 공급 등 생명 유지에 필요한 치료를 중단해 생을 마치게 하는 것이다. 반면 적극적 안락사는 의사가 환자에게 직접 치명적인 약물을 주입해 죽음에 이르게 한다.
③“평등권 침해” 논란
그는 가까운 뉴저지주에서 조력 사망하려고 했지만, 뉴저지주 법이 허용 대상을 주 거주자로 한정하고 있어 불가능했다. 고바토스는 이런 조항이 평등 보호 조항 등에 위배된다는 입장이다. 4기 림프종 환자인 고바토스는 “끔찍한 고통과 공포 속에서 죽고 싶지 않다. 원할 때 합법적으로 삶을 마칠 수 있는 것은 자비와 친절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조력 사망 접근권 관련 단체인 ‘연민과 선택(Compassion & Choices)’에 따르면 2021년 오리건주와 2022년 버몬트주에서도 비슷한 소송이 제기됐고, 결국 주 의회가 거주 요건을 폐지하는 개정 법령을 각각 지난해 7월과 5월에 통과시켰다. 고바토스는 뉴저지 주의 소송이 기각되면 버몬트 주에 갈 예정이다.
④장애인에 강요 위험?
변호사 마이클 비엔은 “미묘한 종류의 차별로 필요한 치료를 받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조력 자살을 최선의 선택으로 여기도록 강요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완화의료 의사 네이선 페어맨은 “장애가 있다고 조력 사망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며 “법에 명시된 모든 안전장치를 통과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⑤살인죄는 아니다…그럼 가능?
남미 에콰도르는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안락사, 조력 사망 논의가 불 붙었다. BBC 등에 따르면 에콰도르 헌법재판소는 지난 2월 안락사를 10~13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살인으로 간주하는 기존 형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안락사를 희망하는 루게릭병 환자 파올라 롤단의 헌법 소원을 받아들였다. 헌재는 “이런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생존 의무를 부과하는 건 불합리하다”며 “존엄한 생명에 대한 권리를 지키려 노력하는 의료진에게 더 이상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위헌 판결에 따라 에콰도르는 콜롬비아(1997년)에 이어 남미에서 안락사를 범죄에서 제외한 두 번째 국가가 됐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롤단은 판결 이후인 지난달 세상을 떠났다. 가족들은 그가 자연사했는지, 조력 사망으로 세상을 떠났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일본에선 안락사에 18년형
의사 측 변호인은 “자살도 어려운 상태의 난치병 환자는 원하지 않는 삶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는 자기결정권을 규정한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의사가 환자로부터 130만엔(약 1100만원)의 보수를 받았으며, 진정으로 피해자를 위한 것으로 생각했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국선 연명의료 거부할 권리만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 원혜영 전 의원은 “조력 사망은 최근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이슈로, (개별적인) 법안 발의 정도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신중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회복불가능한 환자에게 결정권을 보장하느냐가 핵심으로, 큰 방향이 잡혀야 세부 내용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에도 관련 헌법소원이 제기된 상태다. 지난해 12월 국내 한 척수염 환자는 조력 사망 법제화를 요구하는 헌법소원을 냈다. 조력 사망이 제도화되지 않아 행복추구권과 자기결정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면서다.
이석배 단국대 법학과 교수는 “연명의료결정법이 현재 시행중이지만 사실상 의미가 없다”며 “임종 환자가 아니면 말기 환자도 연명의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력 사망을 말하기 전에 치료의 중단을 요구할 수 있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보장하는 것부터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청한 국내 생명윤리 분야 권위자는 “생명 문제를 개인의 권리로 접근하는 서양과 달리 동양 문화권에선 조력 사망을 합법화한 곳이 아직 없다”며 “한국은 연명의료 거부가 가능해진 지 수년이 지나면서 이젠 조력 사망이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화두로 던져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