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쪽이든 김 위원장의 발언은 형량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는 일반 형사피고인 측 입장에서는 거론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지난해 3월 이 대표가 기소된 ‘대장동ㆍ위례 특혜 개발’과 ‘성남 FC 불법 후원금’ 사건, 그리고 이후 추가 기소된 ‘백현동 특혜 개발’ 사건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 김동현)에서 병합해 다루고 있다. 공직선거법 위반, 위증교사 혐의 사건 등 다른 재판도 진행 중이지만 이 대표 측에서는 대장동 관련 재판에 가장 민감해한다.
이 대표는 지난달 12일에는 오전 재판에 출석하지 않고 오후에 ‘지각 출석’했다. 재판부가 일정을 변경하지 않았음에도 이날 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하느라 늦었다. 7일 후인 19일에는 아예 법원에 나타나지 않았다. 총선 때문에 바쁘다는 이유를 댔다. 전날 불출석 요청을 했지만 재판부는 허가하지 않았다. 그러다 “안 나오면 강제 소환을 검토하겠다”고 재판부가 강력히 경고하자 지난달 26일과 29일에는 법정에 나왔다. 2일과 9일에도 그럴 것이다. 지난해 국회 일정과 이 대표의 단식, 그리고 피습사건의 영향으로 재판이 늦어지고 있어 일정을 미룰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입장이다. 형사소송법에는 원칙적으로 피고인이 반드시 출석해야만 재판을 진행하도록 돼 있다.
재판부가 강력한 제재 의지를 밝히지 않았다면 이 대표의 재판은 총선 때까지 열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법률가이면서도 “제가 없더라도 재판 진행에 아무런 지장이 없지 않으냐”고 반문한 이 대표, 그리고 “본인 후보자 지위뿐 아니라 당 대표 지위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선거 직전까지 기일 잡는 건 너무나 가혹하다”는 변호인의 법정 발언은 사법부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각을 여실히 보여줬다. “피고인 정치 일정을 고려해서 재판기일을 조정하면 특혜라는 말이 나올 것”이라고 원칙적으로 판단한 재판부가 용기 있어 보일 지경이다.
재판부 허가 없이 지각, 불출석
야당 대표직 이용한 사법 무시
재판 지연 책임 반드시 물어야
야당 대표직 이용한 사법 무시
재판 지연 책임 반드시 물어야
총선 후는 어떨까. 각종 여론조사에 의하면 민주당이 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크다. 거기에 반정권 선명성을 강조하는 조국혁신당까지 가세한다면 ‘방탄 국회 회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재판 지연을 가능케 할 수 있다. 어떻게든 선고를 늦춰 이 대표가 2027년 대선 후보로 나설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여기저기서 시사하고 다니는 것처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를 통해 재판이 하나라도 마무리되기 전에 대선을 치르고 싶을지도 모른다.
이 대표를 비롯한 일부 정치인들의 사법부 무시는 법원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있다. 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만 하더라도 2022년 9월 기소된 이 대표는 지난해 단식 등을 이유로 수차례 출석하지 않았다. 원칙적으로 기소 후 6개월 안에 1심 선고가 났어야 했지만, 사건을 16개월 동안 맡아오던 재판장이 지난 1월 사임하는 바람에 언제 선고가 날지 모른다. 지난해 9월에는 ‘정당의 현직 대표’라는 점이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의 한 이유로 제시되기도 했다.
삼권분립의 원칙을 무시하는 정치인들의 행위는 반드시 평가받아야 한다. 공식적인 양형 사유는 아니더라도 훗날 선고를 내릴 때 재판 불출석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정당 대표 등 운운하며 판결에 잣대를 달리하지 말고 사법부 위에 군림하려는 왜곡된 정치 문화를 법원이 바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