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라고 다 똑같지 않아
그런데 이렇게 암을 조기 진단하여 잡는 데 뜻밖의 폐단이 있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진단만 하는 것이 대수가 아니라 진단이 나온 후 거기에 적합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암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잘 인식해야 한다. 특히 유방암 같은 경우 암세포가 몸에 있어도 종양이 커지지도 않고 아무 증상이 없이 오랜 기간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암이라고 해서 무조건 수술을 하거나 방사선이나 항암제 치료를 할 경우 얻는 것은 없이 도리어 환자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언어에 박혀 있는 고정관념들
‘암’이란 말 자체로 공포심 느껴
양자역학에 ‘입자’는 없어
상황 따라 언어도 바뀌어야
‘암’이란 말 자체로 공포심 느껴
양자역학에 ‘입자’는 없어
상황 따라 언어도 바뀌어야
소립자는 정의된 모양 없어
이러한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가 익숙한 용어를 사용할 때 거기에 딸려있는 고정 관념을 그대로 가져올 위험이 있다. 일상생활과 거리가 먼 과학 용어를 봐도 그렇다. 예를 들어 물리학자들이 노상 사용하는 ‘입자’(粒子)라는 단어를 보자. 영어로는 ‘particle’인데 그 말에는 조그맣고 단단한 알갱이라는 함의가 있고, 그래서 한문의 낟알 립(粒)자를 써서 번역한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원자론에서부터 17~19세기 물리학의 고전역학까지 모든 이론은 그러한 입자를 다루었다. 그런데 20세기 초에 양자역학이 나오면서 물질의 기본적 구성물들은 그런 알갱이가 아니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전자와 같은 소립자는 날카롭게 정의된 모양이 없을 뿐 아니라 운동량과 위치도 동시에 정확히 가질 수 없다는 것이 양자역학의 정설이다. ‘입자’라고 하면 떠오르는 곡식 알갱이와는 전혀 다른 존재다. 그런데도 과학자들은 이런 신비한 양자역학적 존재들을 언급할 때 계속 ‘입자’라는 말을 쓰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들을 때 그 의미를 오해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조차도 입자라는 말을 들으면 자연히 고전적인 알갱이의 개념을 생각하게 된다.
생물학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흔히 볼 수 있다. 물리학과 생물학 연구를 하다가 과학사와 과학철학의 대가가 된 켈러(Evelyn Fox Keller)는 ‘유전자’(gene)라는 말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단어에는 아주 옛날부터 내려온 결정론적이고 환원론적인 유전학 이론들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켈러는 그러한 유전자 개념이 20세기를 풍미하였지만 21세기 유전학에는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생체의 모든 것은 DNA 구조로부터 환경적 요소와 상관없이 단순하게 결정된다는 환상을 버려야 생물학이 더 수준 높게 발전할 수 있으며, 우리가 물려받은 ‘유전자’나 ‘유전’이라는 말 자체가 그러한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서유럽의 우익은 보수와 거리 멀어
정치적인 맥락에서도 언어의 잘못된 사용은 우리의 사고를 오도하며 판단을 흐리게 한다. 예를 들어 우익은 보수이고 좌익은 진보라고들 생각하는데, 사실 근래 서유럽이나 미국 같은 곳에서 퍼지고 있는 우익세력들을 보수라고 칭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그들은 전통적 정치 체제를 보존하자는 것이 아니라 파괴해 버리려는 시도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우파라고 해서 보수라 부르면 무언가를 보존하고 지킨다는 ‘보수’의 진정한 의미는 증발해 버린다.
언어는 인간이 생각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유용한 도구다. 그러나 말 한마디마다 숨겨진 고정관념이 따라다닌다. 생각 없이 쓰는 언어는 참되고 유연한 생각을 막는 감옥이 될 수 있다. 거기에서 필요할 때마다 탈출하고자 하는 것이 진정한 과학적 태도다.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