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5월부터 올해로 39년째 ‘등대지기’로 일하고 있는 김대현(58·부산시 영도구 청학동) 부산지방해양수산청 해양교통시설 부산항 관리센터장이 주인공이다. 그의 둘째 아들 성언(28)씨도 지난 1월 해양수산부 기술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성언씨는 해양수산인재개발원에서 이달 말까지 3주간 직무 교육을 받는다. 이후 다음 달부터 마산지방해양수산청에서 항로표지관리원으로 근무를 시작한다. 등대 등 항로표지 관리·설계 업무를 담당한다.
김대현 센터장은 맞벌이 부부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인 성언씨는 어린 시절 아빠가 일하는 등대에 자주 왔다. 두 아들은 아빠의 모습과 바다를 지켜보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가 일하는 동안 아이들은 얼어붙은 달 그림자가 물결 위에 자는 걸 등대에서 보며 잠이 들곤 했다.
해방 직후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거쳐 김 센터장까지 받든 등대지기 ‘업’은 이제 4대째 이어지게 됐다. 김 센터장 할아버지는 1946년부터, 아버지는 1967년부터 등대 지키는 일을 했다. '등대지기'곡의 노랫말 대로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이 대대로 이어지는 듯한 분위기다.
군인이던 아들, 첫 시험에 곧장 합격했다
김 센터장은 아들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조심스럽게 제안했다고 한다. 성언씨는 군에서 나온 지 5개월여 만에 치른 해양수산부 기술직 시험에 합격했다. 이에 김 센터장은 “공무원 시험에 이렇게 빨리 합격할 줄 몰랐다”며 흐뭇해했다.
“40년 보살핀 바다, 아들도 잘 지켜주길”
등대지기 일은 힘들 때가 많다고 한다. 태풍이나 폭풍우가 몰아칠 때는 어선의 안전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2003년 태풍 '매미'가 왔을 때를 꼽았다. 김 센터장은 “당시 부산 오륙도 등대에서 근무했는데 강한 바람에 파도가 섬 전체를 집어삼킬 듯했고, 통신마저 끊겨 무서웠다”고 했다.
그는 “당시 오륙도까지 배편이 없어 남구 용호동에서 낚싯배를 얻어타고 출근했고, 기상이 안 좋을 땐 며칠씩 출근하지 못했다”고 했다. 또 악천후 때문에 섬에 갇혀 며칠씩 나오지 못하거나, 중요한 경조사를 놓치는 때도 잦았다. 하지만 ‘바다를 지킨다’는 생각으로 견뎠다고 한다. 김 센터장은 “안개가 몰려오는 등 기상이 급변할 땐 등대에서 음량 신호를 크게 울려야 한다. GPS가 없는 소형선은 오직 이 소리에 의지해 방위와 거리를 가늠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