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단순히 눈이 물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진짜 무엇인가가 풀린다. 우선 눈 속에는 공기 중의 질소·산소 등이 들어 있다. 이게 눈 속에 갇혀 있다 물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땅에 풀려 식물들이 흡수할 수 있는 영양분이 된다. 또 딱딱한 흙이 얼음으로 팽창이 되었다 녹으면 흙에 공기구멍이 생긴다. 두부를 냉동실에 넣었다가 빼내면 수분이 있던 곳에 구멍처럼 공기층이 생기는 것과 비슷하다. 이 공기구멍으로 성장하는 식물의 뿌리가 뻗어나간다. 이 모습도 분명 뭔가 풀려나가는 모습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녹은 물이 흙 알갱이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부풀어 오르면 굳이 쟁기질을 하지 않아도 땅 스스로 일굼이 일어난다.
새벽부터 시작했지만 튤립·수선화·히야신스의 알뿌리를 다 심고, 원예 상토를 덮어주고, 물을 주고 나니, 해질녁에서야 정원일이 끝났다. 허리를 펴기도 어려울 정도로 온몸이 뻐근하지만, 땅이 풀렸으니 그 위의 식물도 잘 자랄 것임을 믿는다. 그리고 나의 삶도 이 봄, 부드럽고 뽀송하게 잘 풀어질 것이라고도 믿는다.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