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승장구하던 최고경영자(CEO)가 시한부를 선고받는다면? 원인은 ‘암(癌)’이 아니라 ‘인공지능(AI)’일 수 있다. 기술 최전선인 미국 빅테크들부터 하드웨어(HW)·소프트웨어(SW) 기업까지 모두 AI 비전과 투자 여부에 따라 CEO 명운이 갈리는 모습이다.
2일(현지시간) 비즈니스 인사이더 등 외신에 따르면 구글 AI 오류 여파로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의 사임 가능성이 구글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구글은 텍스트·이미지·음성 등을 생성하는 멀티모달 AI 모델 제미나이를 지난달 1일 발표했으나, 결과물에 중대 오류가 발생하자 20일 만에 서비스를 중단했다. ‘기술의 구글’이 체면을 구긴 셈인데, 이후 테크 업계 유명 투자자인 사미르 아로라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피차이는) 곧 해고되거나 사임할 것”이라고 공개 비판했다. 팀 쿡 애플 CEO의 ‘AI 실기(失期)론’에 이어 순다 피차이 구글 CEO가 ‘AI 책임론’에 맞닥뜨린 상황이다.
‘HW+AI’ 성공한 CEO, 위상 급등
이날 PC·서버 업체인 델도 하루 만에 주가가 32% 올랐다. 회사의 AI 용 서버 매출이 시장 전망치를 뛰어넘어서다. PC 시장이 정체되자 델은 1년 전 엔비디아 HW·SW와 자사 서버를 결합해 기업의 생성AI 용 인프라 구축 사업을 시작했다. 블룸버그는 “경쟁사 휴렛팩커드(HP)는 고성능 서버용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연 매출 전망을 낮췄다”며 대조했다.
실기한 애플, 애매한 삼성
삼성은 모바일(MX)에서는 애플보다 먼저 AI 폰을 내놓는 등 앞서고 있다.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장(사장)은 지난달 삼성 공식 블로그에 ‘모바일 AI 시대를 열다’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해 “AI 기술만큼 세기적 판도 변화를 이끌 혁신은 없었다”고 했다. 그는 “모바일 기기는 AI의 가장 중요한 시작점”이며 “강력한 모바일 AI 생태계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1위 기업이면서도, 메모리가 중요해지는 AI 시대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은 지난 26일 5세대 HBM(광대역폭메모리)3E 양산을 발표하며 엔비디아 수주를 따낸 사실도 공개했다. HBM은 GPU 등 AI 연산 반도체에 내장되는 메모리다. 메모리 2위 기업인 SK하이닉스가 HBM에서만큼은 삼성을 따돌렸는데, 이제 3위 기업 마이크론마저 삼성을 제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6개월간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주가는 각 31%, 35% 상승했으나 삼성전자 주가 상승분은 3%에 그쳤다.
다시 ‘경영보다 기술’ 시대
전임 CEO인 프랭크 슬루트만은 데이터도메인, 서비스나우 등 미국 테크 기업의 3연속 기업공개(IPO)를 성공시킨 전문경영인으로, 엔지니어가 창업한 스노우플레이크의 경영 효율화와 기업문화 혁신을 이끌었다. 그러나 회사 이사회는 ‘AI 시대에 AI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기술’에 다시 무게를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