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큰 번영을 누렸다. 성장을 이끌던 케네디 대통령이 1963년 암살되자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지만, 그 후임 존슨 대통령은 자신감에 넘쳤다. 경제는 두 자릿수 성장률에 근접했고 물가는 1%대로 안정됐다. 자신감을 바탕으로 그는 ‘위대한 사회’라 불리는 거대한 복지정책을 발표했다. 오랜 기간 소외된 흑인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민권법에도 서명했다.
1970년대 들어 미국의 힘에 빈틈이 노출되자 중동이 불안해졌다. 1973년 아랍연합군이 이스라엘을 침공했다. 이 전쟁은 이전과 달리 매우 격렬했다. 국제유가가 순식간에 3배로 뛰었다. 미국 물가도 들썩였다. 1년이 채 되지 않아 인플레이션은 12%를 넘었다. 미 정부는 갈팡질팡했다. 닉슨 대통령은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 인상을 방해했다. 워터게이트로 낙마한 닉슨의 뒤를 이은 포드 대통령은 물가 잡기에 진심이었다. 카풀을 장려하고 채소도 손수 키우자고 독려했다. 그 덕택에 1976년 물가는 5%로 내려왔지만, 그 해 치러진 대선에서 집권 공화당은 졌다. 체감 물가는 여전히 높았고 유권자는 표로 응징했다. 어렵게 선거에 이긴 카터 대통령에게도 물가는 난제였다.
1979년에는 이란 혁명이 일어났다. 국제유가가 또 한 번 요동쳤다. 인플레이션이 다시 두 자릿수가 됐다. 카터는 폴 볼커를 연준 의장으로 임명해 물가를 잡게 했다. 연준은 금리를 21%로 올렸다. 물가는 다소 내려왔지만 카터는 선거에서 대패했다.
누군가 ‘문제는 물가야, 바보야!’라며 훈수를 두는 듯하다. 최근에도 물가는 다소 안정된 듯 보이지만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인플레이션 불안감은 여전하다. 물가 불안이 이어지면 경기가 위축된다. 고금리가 지속돼 경기침체가 가시화한다. 물가와 경기 사이에 균형감각을 지닌 정책의 시행이 절실한 이유다.
김성재 미 퍼먼대 경영학과 교수·『페드시그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