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성재의 마켓 나우

[김성재의 마켓 나우] 문제는 물가야, 바보야!

중앙일보

입력 2024.02.22 00:26

수정 2024.03.06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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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과 교수·『페드시그널』 저자

국가의 흥망은 경제가 좌우한다. 번영은 전쟁의 뒤를 잇는 물가 급등 때문에 위협받는다. 그 시대의 초강대국으로 군림하며 글로벌 교역시스템을 건설한 로마제국과 원나라도 물가 앙등에 민심이 이반해 붕괴했다. 미국 역대 정권도 다르지 않았다.
 
미국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큰 번영을 누렸다. 성장을 이끌던 케네디 대통령이 1963년 암살되자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지만, 그 후임 존슨 대통령은 자신감에 넘쳤다. 경제는 두 자릿수 성장률에 근접했고 물가는 1%대로 안정됐다. 자신감을 바탕으로 그는 ‘위대한 사회’라 불리는 거대한 복지정책을 발표했다. 오랜 기간 소외된 흑인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민권법에도 서명했다.
 

[일러스트=김지윤]

공산권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베트남전쟁에도 뛰어들었다. 미국 자동차 3사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90%에 이르던 당시 미국의 승리를 의심한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베트남전은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1968년 3월 존슨 대통령은 놀라운 발표를 했다. 4년 전 대선에서 선거인단의 90%를 석권하는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던 그가 재선 도전 포기를 선언했다. 베트남전이 발목을 잡았지만 보다 큰 문제는 경제였다. 장기간 안정세를 보이던 물가가 4% 가까이 치솟았다.
 
1970년대 들어 미국의 힘에 빈틈이 노출되자 중동이 불안해졌다. 1973년 아랍연합군이 이스라엘을 침공했다. 이 전쟁은 이전과 달리 매우 격렬했다. 국제유가가 순식간에 3배로 뛰었다. 미국 물가도 들썩였다. 1년이 채 되지 않아 인플레이션은 12%를 넘었다. 미 정부는 갈팡질팡했다. 닉슨 대통령은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 인상을 방해했다. 워터게이트로 낙마한 닉슨의 뒤를 이은 포드 대통령은 물가 잡기에 진심이었다. 카풀을 장려하고 채소도 손수 키우자고 독려했다. 그 덕택에 1976년 물가는 5%로 내려왔지만, 그 해 치러진 대선에서 집권 공화당은 졌다. 체감 물가는 여전히 높았고 유권자는 표로 응징했다. 어렵게 선거에 이긴 카터 대통령에게도 물가는 난제였다.


1979년에는 이란 혁명이 일어났다. 국제유가가 또 한 번 요동쳤다. 인플레이션이 다시 두 자릿수가 됐다. 카터는 폴 볼커를 연준 의장으로 임명해 물가를 잡게 했다. 연준은 금리를 21%로 올렸다. 물가는 다소 내려왔지만 카터는 선거에서 대패했다.
 
누군가 ‘문제는 물가야, 바보야!’라며 훈수를 두는 듯하다. 최근에도 물가는 다소 안정된 듯 보이지만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인플레이션 불안감은 여전하다. 물가 불안이 이어지면 경기가 위축된다. 고금리가 지속돼 경기침체가 가시화한다. 물가와 경기 사이에 균형감각을 지닌 정책의 시행이 절실한 이유다.
 
김성재 미 퍼먼대 경영학과 교수·『페드시그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