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4일은 러시아의 침략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지 꼭 2년째 되는 날이다. 전황과 국제정세엔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영토 주권을 수호하겠다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투지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24년째 거주하고 있는 임길호(53)씨는 키이우의 현재 상황을 중앙일보에 e메일로 보내왔다. 키이우 한국교육원에서 근무 중인 임씨는 개전 이후에도 키이우를 떠나지 않았다. 임씨가 전해온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장 일기’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24년째 거주하고 있는 임길호(53)씨는 키이우의 현재 상황을 중앙일보에 e메일로 보내왔다. 키이우 한국교육원에서 근무 중인 임씨는 개전 이후에도 키이우를 떠나지 않았다. 임씨가 전해온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장 일기’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쾅, 콰쾅."
지난 7일 오전 6시. 이른 시간 출근길에 나선 내 귀에 벼락같은 소리가 박혔다. 러시아의 미사일을 우크라이나 방공 시스템이 요격하는 소리다. 이젠 익숙해질만도 한데, 매번 심장이 터질 듯 쿵쾅댄다. 서둘러 지하철역으로 숨어 들어가 폭음이 잦아들기만 간절히 기다렸다.
이날 러시아군은 몇 시간에 걸쳐 60기의 미사일을 쏘아댔다. 지하철 역사는 나처럼 겁에 질린 우크라이나인들로 꽉 찼다.
지칠대로 지친 표정들. 지난 2년, 키이우 시민들에게 불안과 공포는 일상이 됐다. 얼굴에는 피로와 분노가 역력하다. 누군가 살짝만 건드려도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다. 중장년층은 고혈압·심장 압박 증상에 시달리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불안감에 매사 놀라고 긴장한다.
공습이 몇 시간 뒤에야 겨우 멈췄고, 이내 지하철 운영이 재개됐다. 다들 서둘러 지하철을 타려는 통에 역사 안은 어수선해졌다.
나는 키이우 한국교육원에 근무하며 24년 째 이곳에 거주 중이다. 2년 전 러시아군의 전면 침공 직후 주우크라이나 한국 대사관은 서둘러 대피를 권했지만, 나는 남기로 결정했다. 가족같은 우크라이나인들을 두고 나만 빠져나가는 것이 양심 상 허락되지 않았다. 지금도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다.
공습보다 공포는 무너진 경제
공습·사이렌 소리에도 차츰 적응하고 있지만, 불안한 경제 상황이 주는 심리적 압박감은 이겨내기 쉽지 않다. 현재 우크라이나 경제는 서방의 원조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지원 상황에 따라 환율이 널뛰기를 하는 등 금융 시장의 기복이 심하다.
우크라이나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수출액은 약 1914억 달러(약 256조원)로, 전년 대비 18.7%(358억 달러·약 48조원) 감소했다. 최근 10년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곡물 수출로 인한 외화 수입이 60%에 달하는데, 이렇게 번 외화는 대부분 전쟁 자금으로 투입된다.
재정난으로 공교육을 유지하는 것도 빠듯한 형편이다. 초·중등학교에 무료로 배포하던 교과서를 인쇄할 돈마저 부족해 쩔쩔매고 있다.
며칠 전, 우연히 동부 최대 격전지였던 바흐무트에서 키이우로 피란 온 한 20대 청년을 만난 적 있다. 그는 한 달 2500흐리우냐(약 9만원)의 지원금을 받는다고 하는데, 이 돈으론 아파트 한 달 임대료가 300달러(약 40만원)가 넘는 키이우에선 살기 힘들다고 했다. 야간 음식 배달 등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해도 생활이 어렵다고 털어놨다.
임금이 체불되는 상황도 꽤 있다. 개전 초기보다 은행에서 돈 빼는 사람이 드문 것이 느껴진다. 다들 허리띠를 졸라매고 버티고 있다. 다만 러시아는 일제가 강점기 말 태평양전쟁을 벌일 때처럼 빵 공장에서 드론을 만드는 등 전시 경제 체제를 만들었다는데, 우크라이나는 아직 민간 기업을 강제 동원하지 않고 있다.
정전 중인 한국…유사시 대비됐나
개전 초 러시아는 사흘이면 키이우를 점령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우크라이나는 막아냈다. 한국이 여기서 배울 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전쟁 초 통신이 끊기지 않았던 게 엄청난 역할을 했다. 인터넷이 유지된 덕에 시민들은 실시간으로 상황을 파악했고, 정보를 공유했다. 고립감이 사라지면서 공포와 긴장도 완화됐다.
방공호도 중요하다. 러시아군의 끊임없는 미사일과 무인기(드론) 공습으로부터 키이우 시민을 지켜준 건 방공호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 지하철역이 대표적이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지하철 역사는 지하 30~60m로 깊어 공습에 끄떡없다. 특히 아르세날나역은 지하 105.5m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깊다. 구소련 때 건설돼 사유지 논란 없이 깊게 팔 수 있었다고 한다.
전기와 약을 확보하는 것도 필수다. 개전 초기, 키이우에서 가장 많이 팔린 품목은 손전등과 휴대폰 충전용 배터리였다. 또 사람들이 가장 먼저 줄을 선 곳은 상점이 아니라 약국이었다. 특히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으로 주기적으로 약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지금은 약국이 정상 영업 중이지만, 수입이 원활하지 않아 전쟁 전만큼 약이 많진 않다.
전쟁 때는 군인만 싸우는 게 아니다. 민간인도 하루하루 전쟁을 치러내고, 이들의 침착한 대응이 피해를 줄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실제로 러시아 침공 초기 키이우의 대중 교통이 모두 멈춰섰지만, 민간 자원봉사자들이 나서서 자가용으로 신속한 귀가를 도왔다. 그 때 느낀 고마움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또 난생 처음 폭격 소리를 들으면 공포를 느끼고 공황에 빠질 수밖에 없는데, 이때 시민을 안정시키는 건 철저하고 정확한 매뉴얼이다. 한국도 이처럼 유사시에 대비한 매뉴얼을 마련해 뒀는지 궁금하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만약에’라는 가정을 하게 된다. 나는 지금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지만, 혹시 한국에 전쟁이 난다면 반드시 돌아가 한국을 지킬 것이다.
"지고 있지 않다"는 우크라…전후 복구 모델은 한국
푸틴 대통령은 현재의 전선을 국경선으로 정하는 조건으로 휴전할 뜻을 내비치는 듯 하지만, 내가 아는 한 우크라이나인들은 이를 받아들일 의사가 전혀 없다. 우크라이나는 씨앗만 뿌리면 곡물이 알아서 잘 자란다고 할 정도로 비옥한 흑토 지대다. 그래서인지 이들에게 땅은 생명이자, 애착의 대상이다. 휴전을 위해 영토를 떼어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를 반드시 수복하겠다는 의지도 매우 강하다.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키이우 일기-그 후 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