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사기 광풍, 그 이후
보증금 기약 없는데 유지·관리 이중고
미추홀구는 북쪽으로 국철 1호선이 관통하고, 수인분당선과 인천2호선이 각각 동북쪽과 남서쪽을 지난다. 몇몇 재개발 지역에서 대규모 아파트 신축 공사가 진행중이지만 대부분 빌라와 나홀로 아파트들로 채워진 곳이다. 교통은 편리한데 전셋값은 낮아 수도권에서 직장을 잡은 신혼부부나 독신 청년들이 대거 몰린 곳이다.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전세사기에 2700여 세대 피해 발생
경매 중단됐지만 건물 유지·보수 손 못대, 삶의 터전 붕괴중
우선매수·LH매입 등은 효과 못내…특별법 개정은 ‘논란중’
남헌기 징역 15년,‘범단’ 인정돼도 더 안늘어… 환수도 미미
경매 중단됐지만 건물 유지·보수 손 못대, 삶의 터전 붕괴중
우선매수·LH매입 등은 효과 못내…특별법 개정은 ‘논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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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범 남씨는 하늘종합주택이란 관리회사도 차려 세입자로부터 꼬박꼬박 관리비를 받아갔다. 그런데 이 돈 일부를 횡령하고 남은 돈도 묶이면서 큰돈이 들어가는 유지·보수는 전면 중단된 상태다. 관리업체를 믿을 수 없게 된 주민 일부가 관리비 납부를 거부하자 전기료 연체를 이유로 관리업체가 배전반을 무단으로 뜯어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건물 유지·보수 문제는 전세 사기가 발생한 다른 도시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난해 11월 서울 강서구청이 전세 사기 피해자 355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 70.3%가 건물 유지보수 문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보증금 회수는 막막한데. 사건이 장기화하면서 피해자들의 삶의 터전이 서서히 붕괴하고 있었다.
숨통은 트였지만, 구멍 큰 특별법
미추홀은 피해 규모도 크지만 피해자들이 처음으로 집단 대응을 하기 시작한 곳이다. 그 중심에 안상미(45) 씨가 있다. 그는 2020년 미추홀구 숭의동 H아파트에 보증금 7200만원의 전세로 입주했다. 한차례 계약을 갱신한 직후인 2022년 7월 집이 경매로 넘어갔다는 통보를 받았다. 두 동짜리 아파트 100여 세대가 모두 같은 처지였다. 변호사비를 아끼기 위해 공동대응에 나섰는데 인천지역 피해자 대책위원회로 발전했고, 도시별 연합체인 전국 대책위도 책임지게 됐다.
대책위가 활동하던 지난해 6월 특별법이 제정됐다. 특별법은 ▶피해자 인정 ▶경(공)매 중단 ▶우선매수청구권 인정 ▶LH 매입 후 재임대 ▶금융지원 등이 골자다. 지난달 기준 전세 사기 피해지원위원회가 공식 인정한 피해 가구 수는 1만 944채에 이른다. 이들이 신청할 경우 법원은 일단 경매를 중단한다. 당장 거리로 나앉는 걱정은 일단 면했다.
특별법에 규정된 경매 유예는 최장 1년까지다. 그런데 올해 들어 다시 경매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지난달 말부터 인터넷 커뮤니티에 빨간 딱지로 도배된 지역별 경매현황 지도가 나돌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이 대표적인데, 미추홀 역시 위험 반경에 들었다.
그나마 경매 낙찰금을 낼 수 있는 피해자는 극히 일부다. 보증금이 전 재산인 대부분의 피해자는 LH의 매입 후 재임대에 기대를 걸었다. 주변 월세의 35~50% 수준에서 최장 20년까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홍보는 거창했지만 정작 지금까지 매입이 이뤄진 곳은 한 곳에 불과하다. LH가 매입하려면 서류상 하자는 없어야 하는데, 피해 아파트 특성상 도면과 실제 구조가 다르거나, 허가와 다른 용도로 쓰이는 곳이 많아 번번이 매입을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안 위원장은 “매입이 안 되면 다른 임대주택을 내준다고 하지만, 그곳에는 어려운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 끼어들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남은 희망은 특별법 개정이다. 지난해 말 야당 단독으로 상임위를 통과했는데, 정부와 여당이 반대해 법사위에 묶여 있다. 핵심 쟁점은 '선구제 후구상' 방안. 사인 간 거래에서 발생한 피해를 세금으로 메워줄 수 없다는 논리는 넘기 힘든 벽이다. 피해자들은 "건설사들의 PF 부실은 지원하면서 서민들의 전세 피해는 구제할 수 없다는 것은 차별"이라고 주장하지만, 법이 개정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법정 최고형이 남긴 과제
미추홀을 둘러보고 며칠이 지난 7일, 인천지방법원 형사 법정 324호실에선 남 씨 일당에 대한 선고가 있었다. 30석 남짓한 법정은 피해자들로 가득 찼고, 좌석 뒤쪽이나 옆에서 서서 듣는 방청객도 많았다.
재판장인 형사1단독 오기두 부장판사는 형량 선고에 앞서 재판부에 접수된 피해자들의 사연을 읽었다. 사회에 나오자마자 파산한 스물 여섯살 청년, 365일 야간작업하며 받은 200만원 월급을 날린 가장, 딸 결혼식에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자살을 시도한 아버지…구구절절한 사연이 법정을 채우는 동안 뒤쪽에선 울음과 한숨 소리가 퍼져나갔다.
남 씨는 다른 재판부에서 범죄단체구성죄에 대한 재판도 받고 있다. 인천지검 관계자는 “'범단' 혐의가 인정되더라도 더는 형량을 높일 수는 없지만, 범죄수익금 추적과 환수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11개 조직이 범단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환수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기사 취재에 이유정 인턴기자가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