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시의 ‘마더 엠마누엘 AME 교회’. 일요일인 이날 주일 예배가 열린 교회 안에서 신도들이 부르는 찬송가가 울려 퍼졌다.
1817년에 설립돼 미국 남부에서 가장 오래된 흑인 감리교회로 꼽히는 이 곳엔 아픈 기억도 있다. 2015년 한 백인우월주의자가 총기를 난사해 목사와 신도 9명이 희생됐다. 사건 뒤 장례식을 찾은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추도 연설 중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를 불러 미국인의 심금을 울렸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8일, 민주당 대선 후보를 뽑는 첫 공식 경선인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예비경선·3일)’를 한 달 가까이 앞두고 이 교회를 방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9년 전 총기 난사 사건을 거론하며 “백인 우월주의는 미국을 분열시킨 독”이라고 비판했다.
“4년 전 바이든 찍었지만 이번엔 확신 없어”
특히 주 인구에서 26%를 차지하는 흑인 인구가 많은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에서 압도적 지지세를 확인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리매치가 유력한 대선 본선 경쟁력을 입증시킬 필요가 있었다.
전날 프라이머리 투표에 참여해 민주당 대선 후보로 바이든 대통령을 찍었다는 한 흑인 여성(71)은 “11월 대선은 어느 후보가 더 많은 사람들을 투표소로 끌어모으냐는 싸움인데 바이든 지지자들이 얼마나 열성적으로 투표하러 나갈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옆자리에 있던 다른 흑인 여성(78)은 “4년 전 대선에서 바이든을 찍었지만 이번에도 같은 선택을 할지 확신이 안 선다”고 털어놨다. 이어 “반드시 투표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나 위기감이 4년 전만큼 크지 않다”고 했다.
부인과 함께 예배를 마치고 나온 밥 맥스웰 역시 전날 프라이머리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며 “어떤 정치인이 우리 삶을 바꿀 거라고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독교인으로서 나는 미국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대선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주님의 선택을 믿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바이든 지지율 하락은 ‘나이’ 탓”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만난 흑인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극도의 반감 때문에 그 반대급부로 바이든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꽤 있었다. 이날 교회에서 만난 미 공군 출신 데니스 스탠턴은 “트럼프가 대통령이었을 때 우리가 겪은 혼란을 지금도 기억한다”며 “우리가 대선에서 투표해야 할 지도자는 ‘바른 사람’”이라고 말했다.
프라이머리 당일 웨스트컬럼비아 커뮤니티센터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만난 여성 유권자 쉴라(71)도 “미국은 모두를 위한 나라여야 하는데 트럼프는 부자들만을 위한 나라로 이끌었다”며 “미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해선 트럼프보다 바이든이 낫다”고 말했다.
젊은 층 반감…“전쟁에 팔짱 실망”
부모와 함께 교회 예배에 참석한 한 20대 여성은 “수만 명의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한 가자지구에 더 이상의 살상 공격이 나와선 안 된다”며 “이스라엘을 강하게 압박해야 하는데도 팔짱만 끼는 것 같은 태도는 무척 실망스럽다. 이는 바이든의 재선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최근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내 1000명 이상의 흑인 종교 지도자들 이스라엘ㆍ하마스 전쟁의 휴전을 추진하도록 바이든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많은 흑인 신도들은 가자지구가 이스라엘 공격으로 파괴되고 있는데도 정부와 여당이 휴전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느끼며 환멸감을 나타내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