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보는 단축항공로]
지난해 하늘길 중에서 특별한 지름길(단축항공로)을 사용한 덕에 우리나라를 오가는 항공기들이 덜 배출한 이산화탄소(CO2)를 30년생 소나무의 평균 CO2 흡수량으로 환산해서 나온 수치입니다. 단축항공로는 평상시에는 사용할 수 없지만 군(軍) 비행이 없는 시간대 등 특정한 조건에서 국방부와 협의해 사용할 수 있는 임시항공로를 말합니다.
국토교통부가 2023년 하늘길 운영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국제선 항공편 54만 5478대 가운데 36%인 19만 7544대가 단축항공로를 이용했는데요. 이를 통해 줄어든 비행거리만 385만㎞로 지구 96바퀴에 해당합니다. 단축된 비행시간은 4487시간이고, 절약된 항공유도 2만t이 넘는데요. 돈으로 환산하면 240억원에 달합니다.
또 저감된 CO2도 6만 5000여t으로 강원·중부지방에서 자라는 30년생 소나무 한 그루의 연간 CO2 흡수량(8.6㎏, 국립산림과학원 2019년 자료)으로 나누면 약 760만 그루의 소나무를 심은 효과가 된다는 설명입니다. 전년도인 2022년에는 215만㎞가 단축됐으며, 코로나19로 인해 줄었던 비행편이 많이 회복되면서 지난해에는 그 효과가 더 커진 겁니다.
얼핏 봐도 하늘의 지름길 사용 효과가 상당한데요. 비행기가 다니는 하늘길에는 별다른 구분이 없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노선별로 ‘항공로(항로)’ 즉, 비행경로가 각기 다 정해져 있습니다. 항공사들은 비행거리를 줄이고 운항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가급적 빠른 항로를 선호하지만, 평상시에는 사용이 불가한 하늘길도 있는데요.
군이 훈련 등을 위해 사용하는 '공역(하늘에 일정 높이와 특정 범위로 설정된 공간)'이 대표적입니다. 군 공역에선 수시로 비행 훈련이 있기 때문에 여객기가 이 구역을 통과하는 건 여러모로 위험한데요. 남북 대치라는 특수상황으로 인해 우리나라 하늘의 절반 이상이 군 공역입니다. 그동안 지름길 활용이 어려웠던 이유인데요.
그러다 2004년 관제당국과 국방부·공군 등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군 공역을 가로지르는 9개의 단축항공로가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엔 시간과 연료 절약이 주된 이유였지만 지금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CO2 절감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요. 실제로 항공기 운항 때 배출되는 CO2 양은 상당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자연 발생이 아닌 인공적인 CO2 배출량의 약 2%가 항공운송에서 나온다는 통계도 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단축항공로는 현재는 20개 가까이 운영되고 있는데요. 주로 야간과 주말, 그리고 기상악화로 군 비행이 없는 시간에 활용됩니다. 단축항공로를 이용하기 전에 국토부 항공교통본부 소속 관제사가 공군방공통제소에 연락해 군 공역 사용 여부와 사용 가능시간을 실시간 협의한 뒤 해당 항공편에 단축항공로를 사용한 직선 비행을 지시하게 됩니다. 우리 국적기는 물론 외항사도 모두 대상입니다.
지난해 단축항공로를 이용한 항공편이 가장 많았던 노선은 미주·일본 노선(7만 1386대)으로 전체의 36%를 차지했습니다. 이어서 동남아노선이 25%(4만 8791대), 남중국 노선 20%(3만 9881대) 등의 순이었습니다. 단축된 거리로 따지면 순위가 바뀌는데요. 남중국 노선이 166만 3000여㎞로 가장 많고, 미주·일본 노선이 114만 2000㎞로 뒤를 이었습니다.
참고로 남중국 노선은 푸동‧심천‧하노이‧광저우‧치앙마이‧카트만두‧뉴델리 등으로 향하며, 미주‧일본 노선은 도쿄‧오사카‧앵커리지‧로스앤젤레스 등으로 이어집니다. 또 동남아 노선은 다낭‧홍콩‧싱가포르‧호치민‧타이페이‧쿠알라룸푸르 등을 연결합니다. 유경수 국토부 항공안전정책관은 “단축항공로는 유류비 절감뿐 아니라 정시성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된다”며 “국방부 등과 협의해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