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는 다리 뻗고 자도 피해자는 잠들지 못한다고들 한다. “창피한 놀이감이 되고 말았다”는 억울함과 자괴감 때문이다. 특히, 보이스피싱 피해를 입으면 절망감이 밀려든다. 스스로 한심하게 느껴지고, 주변 사람들은 걱정해주는 양 혀를 찬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 정신 바싹 차리고 살아야 한다니까.”
그렇다. 우린 속인 사람보다 속은 사람을 열등하게 취급해왔다. 사람 믿은 게 큰 잘못이라도 되는 듯 비난하곤 한다. 하지만 어이없이 속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영화 속 덕희를 보라. 집에 불이 나서 아이들과 거리에 나앉을 판이었다. 그런 그에게 ‘손 대리’의 전화는 하늘에서 내려준 동아줄 같았을 터.
함부로 피해자에게 돌을 던지지 말라. 그들은 절박한 상황과 가족에 대한 사랑 때문에 벼랑에 내몰린 것이다. 스스로 주의할 필요가 있지만 남들의 손가락질 받을 일은 아니다. “믿는 놈이 바보”라는 말이 삶의 지혜가 되는 사회는 황량한 가설무대일 뿐이다. 그 안에 어떤 사회적 신뢰도 자랄 수 없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