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를 땅으로 삼아 밥벌이를 한 것이 햇수로 26년쯤 되는데, 따지고 보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반복하여 들은 단골 레퍼토리가 “바야흐로 단군 이래 최대의 불황”이라는 말 아니었나 싶다. 스물셋 작은 잡지사 계약직일 때는 심장에서 쿵 사과 한 알 떨어지는 소리로 들었던 말, 마흔아홉 작은 출판사 대표이고 보니 심장에서 쿵…쿵… 사과 스물여섯 알 떨어지는 소리로 듣게 되는 말. 어느 업계가 매년 호황이겠냐만, 어떤 사람이 매순간 호시절이기만 하겠냐만, 내 사는 일에 국한하여 말할 수밖에 없는바 정말이지 ‘책’은 참 어려운 물성 같다.
정치판 뉴스만 보더라도 그 쉬운 말 ‘백문이 불여일견’이 가장 어려운 말이다 싶어 시인들 네 명이서 지난 주말 강릉의 한 서점을 방문했다. 우리가 좋아 우리들 책이 놓인 매대를 구경하는 일로 새해 힘이나 내어보자 하였는데, 서점 근처에서 와인숍과 케이크 가게를 운영하는 대표님 두 분이 우리들 책을 읽고 각기 어울리는 와인과 케이크를 선물로 준비한 채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누가 시켰나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 것을요. 상생과 연대는 그렇게 발품 가운데 있었다.
김민정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