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마을의 겨울밤은 더 적막하다. 그래서 작은 소리 하나도 벼락이 치는 듯이 크게 들려온다. 육지의 고향집에서 호두를 보내온 것이 있었는데, 어젯밤에는 호두를 깠다. 호두는 껍데기가 울퉁불퉁하고 단단해서 깨기가 쉽지 않았지만, 속이 꽉 차도록 잘 여문 것을 볼 적에는 흐뭇함이 있었고 또 그걸 겨울밤에 하나씩 까고 있으니 한적한 마음이 찾아왔다. 그러면서 한가한 마음의 한구석에는 이런저런, 소소하지만 인상적이었던 지난 일의 무늬가 만져지기도 했다.
스스로 내 마음속 빛 찾았으면
지금의 기쁨은 충분히 누렸으면
수평선처럼 욕망 없이 담담하길
지금의 기쁨은 충분히 누렸으면
수평선처럼 욕망 없이 담담하길
다른 일화도 떠올랐다. 지난달에 초등학교 동기들을 만나 함께 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그날은 몇몇 동기가 송년회 모임을 갖고 난 며칠 후였다. 송년회에 참석했던 친구 가운데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송년회에 안 나온 사람 안부를 묻지 말고, 나온 사람 안부를 물어야 되는 거 아냐?” 그 친구의 말에 따르면 송년회를 갖자고 모여선 정작 모임에 나오지 않은 사람들 안부만 묻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 친구의 말은 모임에 오지 않은 사람의 안부를 묻는 것이 쓸모나 득이 될 것이 없다는 뜻은 아닐 것이었다. 그런 의미보다는 내 눈앞에 있는 사람에 대한 인사와 반가움을 표현하는 일을 뒤로 미루지 않았으면 한다는 의미일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누군가를 만나 내 앞에 그 사람을 마주하고서도 그와 속마음을 더 충분하게 얘기하지 않은 탓에 그와 헤어지고 돌아올 때면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있었다. 이런 경우는 가령 내게 큰 기쁨이 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게 온 큰 기쁨을 내 마음이 온전하게 즐길 수 있도록 그 시간을 넉넉하게 주지 않을 때가 많았다. 여기 있으면서도 딴 데를 자꾸 서성이는 그런 마음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생각난 것은 얼마 전 모임에 갔다 주고받는 대화 중에 우연히 들은 말이었다. 연장자인 그 어른은 글을 쓰는 분이었는데, 연세가 팔순이 넘었다.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이가 드니까 심심해져요. 바다를 보아도 세 해 전 바다와 달리 이제 아무 느낌이 없어요.” 그러자 그 말을 듣고 있던 한 사람이 말했다. “그게 잘 사신 겁니다. 나이가 들면 감정과 욕망에서 벗어나야 해요.” 그 어른께서 말씀하신 심심하다는 것의 의미가 어쩌면 요즘에 도통 감흥이 적어 시심(詩心)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걱정의 고백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지만, 감정의 동요 없이 만사를 그저 예사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안목을 얻은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노경(老境)에 성취할 만한 높은 경지의 시심이기도 할 테니 분명 부러운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바라봄은 수평선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앞서 소개한 문충성 시인은 ‘수평선(水平線)’이라는 시에서 “인간이 사는 땅을 자애(慈愛)의 손길로 재우고 있는 수평선(水平線)”이라고 멋지게 썼다. 격랑 너머에서 한 줄 흰 줄로 세상의 둘레가 되는, 자애의 둘레가 되는 수평선처럼 감정과 욕망을 덜어낸 그 묵묵한 자리, 덤덤하게 된 그 마음씨라면 지혜와 깨달음의 식견이 아닌가 싶었다.
우리는 마음이 한적한 때에 이르러 그동안 알게 모르게 마음에 새겨진 여럿의 무늬를 읽기도 한다. 그 무늬는 흐릿하고 잔잔한 것도 있고 짙고 격렬한 것도 있다. 화로의 불씨 같은 것도 있고 요즘의 바깥처럼 차가운 얼음 같은 것도 있다. 어젯밤에 나는 이 무늬 몇 개를 손으로 쓸어 어루만졌다. 그리고 기억의 무늬를 쓰다듬고 있노라니 무늬는 삼가게 하고 엄숙하게 해 삶에 성스럽게 머무르게 했다.
밤이 제법 깊어서야 호두를 까는 일이 끝났다. 바람 소리는 비탈이 쏟아지는 듯이 훨씬 거칠어졌다. 그러나 앞의 세 가지 일을 떠올리고 나니 내 마음도 집도 환한 빛이 감싸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면에 천리향 화분 하나를 기르고 있는 듯이 그윽한 향기가 감돌았다.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