썼던 카드 또 써먹는 北
하지만 실질적 충격파는 제한적이라는 지적이다. 남북 교류는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빈손으로 마무리된 이후 사실상 다시 끊겼고, 국내에서도 북한을 향한 동족 의식과 통일의 당위성에 대한 인식이 흐려진 지 오래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 등 대남 기구를 정리하라는 김정은의 이날 발언도 사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김정은은 2019년 10월 금강산을 찾아 "금강산관광지구 건축물들이 민족성이란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며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들어내라"고 했다. 이어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2020년 6월에 금강산 관광 폐지를 언급했다. 통일부의 카운터파트로 역할 하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에 대해서도 김여정이 이미 2021년 3월에 "존재 이유가 없어진 대남 대화 기구인 조평통을 정리하는 문제를 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정리를 예고했다.
이와 관련, 2020년 6월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비롯해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북한이 이미 취했던 공격적 대남 기조를 서로 다른 수사를 붙여가며 반복하는 셈이란 지적이 나온다.
물론 대남 적대시 정책에 대한 헌법 명문화를 김정은이 직접 지시한 것은 가볍게 볼 수 없는 조치다. 다만 북한의 헌법은 사실상 정권의 마음대로 언제든지 뜯어 고칠 수 있는 구조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라는 형식적 절차를 거쳐서 개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북한의 헌법은 1948년 9월 제정 이후 전면 개정과 크고 작은 수정·보완 조치까지 합치면 총 16차례 개정됐다. 외교가에서 "김정은의 이번 시정 연설에서 굳이 새로운 내용을 찾자면 선대의 유훈을 저버리기로 했다는 사실 뿐이다"라는 말까지 나오는 이유다.
"北 노선 변화 없다" 일축
그러나 북한이 지난해부터 선제 핵 공격을 가능하게 한 핵무력정책법에 이어 남북을 교전국으로 명시하는 내용까지 헌법화에 나선 건 최고지도자 차원에서 대남·대미 공세의 진정성을 보이기 위한 의도도 있다. 한·미를 아프게 할 수단 하나하나가 아쉬운 북한이 조만간 '선 넘은 도발'을 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특히 올해는 북한이 코로나 19 이후 국경을 완전히 개방한 첫해라 대내외에 보여주기식 성과가 절실한 상황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남북 관계를 전쟁을 불사하는 관계로 설정하고 전쟁 분위기를 최고조로 부각시키는 건 배수의 진을 치겠다는 의미"라며 "내부 결속, 전쟁 억제력 강화, 민생 개선 등에서 반드시 가시적 성과를 내겠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8년 만의 대북 선박 제재
정부가 선박에 대한 독자 제재를 취한 것은 2016년 3월 이후 약 8년 만이다. 최근 북한의 밀수출·입을 제어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해상 차단 노력이 이전만큼 견고하지 못하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정부가 관련 제재를 재개한 것이다.
정부는 관련 보도자료를 통해 “안보리 제재위 전문가 패널은 지난해 9월 보고서에서 북한이 2023년 4월 기준으로 이미 연간 수입 한도의 1.5배에 이르는 정제유 78만 배럴을 반입한 것으로 추정했고, 석탄 등 밀수출도 계속하고 있다고 지적했다”며 “이번 조치는 해상 관련 활동을 통한 북한의 지속적인 불법 자금 및 물자 조달을 차단해 불법 핵·미사일 개발을 단념시키겠다는 우리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