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정부부처 산하 연구소의 팀장급 A(38)씨는 17일 “지난해 육아 휴직으로 3개월 이상 자리를 비울 경우 보직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밖에 없다”는 말을 상사로부터 들었다. 부인과 이어서 육아 휴직을 쓰려던 A씨는 결국 2달 반만 휴직했다.
연구소 사규에는 육아 휴직시 불이익을 주는 구체적인 규정이 언급돼 있지는 않지만, 업무 차질 등을 이유로 인사 불이익당할까 우려돼 내린 결정이었다. A씨는 “사실상 남자 보직자는 육아 휴직을 오래 쓸 수 없는 현실이 씁쓸하다"고 말했다.
최근 결혼한 서울 관악구청 현직 공무원 B씨 역시 자녀 생각이 있지만, 섣불리 출산 계획을 짜지 못했다. 올해부터 “무보직 6급 공무원이 휴직할 경우, 팀장 보직 부여를 제한하겠다”는 내용의 새 인사 규정이 신설됐기 때문이다. 무보직 6급으로 승급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팀장을 맡을 수 있는 데 6개월을 휴직하면 6개월간, 1년 휴직하면 1년간 보직을 맡을 수 없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휴직 종류에 육아 휴직도 예외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기준은 2024년 이후 신규 휴직하는 직원과 기존 휴직 종료 후 연장하는 직원부터 적용된다고 명시됐다. 관악구청 인사팀 관계자는 “쉬지 않고 계속 근무한 직원들과 형평성 문제가 있어 도입했다”면서도 “육아 휴직만 휴직 기간에서 제외할지 내부 직원 의견을 취합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구별로 살펴보면, 동대문구는 휴직 기간에 따라 월 단위로 감점 점수를 부여해 보직 순위를 조정했고, 중랑구와 구로구는 휴직 등 실제 근무하지 않은 기간에 비례해 보직 대기명부 순위를 조정하는 방식이다. 강남구의 경우 휴직 기간을 제외한 실근무기간이 평균 보직 대기기간의 절반 이상이 돼야 하며 실근무기간을 충족했더라도 복직 후 즉시 보직을 부여하지 않고 6개월 이상 근무 후 부여하고 있다.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대표변호사는 “육아 휴직을 실근무기간에 넣지 않는 건 상당히 불합리하며 법적으로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최근 행안부는 지방자치단체별 인사 기준에 대한 위법 여부를 전수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행안부가 전국 지자체의 보직관리 기준과 관련해 지도·감독에 나서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제도적으로 육아 휴직 후 복직에 따른 불이익 처분을 내리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며 “법 위반 요소가 있는지 서울시를 먼저 들여다볼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