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결의 파격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남성복 쇼는 파격적이었다. 칠흑처럼 어두운 공간에 조명만으로 만들어낸 런웨이와 사운드 트랙 등 무대연출과 모델의 동선까지, 쇼의 진행 스타일은 모든 것이 지난해 9월의 앙코라 쇼와 같았다. 구찌는 이를 "구찌 앙코라 쇼의 미러링(Mirroring)"이라 공식적으로 밝혔다.
구찌 앙코라는 '구찌를 통해 다시 패션과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기회'란 의미를 담은 테마다. 사르노는 앙코라(Ancora)라는 단어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그려내는 동시에, 자신이 그리고 있는 구찌의 비전을 이를 통해 보여준다.
정체성 확고히 하는 앙코라 미러링
사바토 데 사르노는 2003년 프라다 여성복으로 시작해 돌체 앤 가바나를 거쳐 발렌티노의 패션디렉터까지 차근차근 경력을 쌓은 디자이너다. 특히 발렌티노에선 11년간 재직하며 전 발렌티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피엘파올로 피촐리의 오른팔로, 브랜드를 글래머러스하고 정제된 실루엣으로 만들어 왔다. 그가 보여주는 구찌 룩이 우아하게 정제돼 있으면서도, 브랜드만의 화려함을 지니게 된 데엔 이런 탄탄한 커리어와 실력이 배경에 있다. 지난해 구찌의 모기업인 케어링은 그를 임명하며 "풍부한 브랜드의 유산을 활용하면서, 하우스의 권위를 강화할 인물"이라 발표한 바 있다.
그는 전임자 알레산드로 미켈레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찌를 이끈다. 미켈레는 자신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도 재직한 8년 동안 몽환적이고 펑키한 맥시멀 스타일로 사람들을 놀래켰다. 사르노는 다르다. 테일러링에 기반한 정교하고 우아한 미니멀 스타일을 통해 진정한 '패션'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는 최근 패션잡지 GQ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컨셉추얼과는 정반대”라고 말한 것도 이와 일맥상통하다.
테일러드 장인이 만들어낸 드라마틱한 디테일
포멀웨어는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을 중심으로 몸에 딱 맞는 실루엣과 이와 대비되는 편안한 핏의 두 가지 실루엣이 눈길을 끌었다. 테일러링의 절정을 보여주는 특징 중 하나로써 파이핑(원단 끝에 얇은 끈을 덧붙이는 기법)이 가미된 재킷도 등장했다. 또한 지난 9월 여성 패션쇼에서 구찌 홀스빗 로퍼를 재해석해 선보인 것에 이어 남성을 위한 새로운 스타일의 구찌 홀스빗 로퍼도 공개했다. 하우스 아카이브에서 가져온 특유의 잠금장치가 특징인 재키 백은 지난 여성 패션쇼에서보다 큰 사이즈로 등장했다.
이번 쇼에는 글로벌 브랜드 앰배서더인 힙합 아티스트 박재범과 가수 겸 배우로 활동하는 아이유를 포함해 전 세계 다양한 분야의 셀러브리티들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