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한국 주적 핵전쟁 각오”
새해 벽두부터 포사격 등 도발
한때 선대 통일유훈 내세우다
이젠 한·미 탓하면서 자기부정
새해 벽두부터 포사격 등 도발
한때 선대 통일유훈 내세우다
이젠 한·미 탓하면서 자기부정
이런 분위기는 이미 지난 연말 전원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한국과 ‘결별’을 선언하며 이미 감지됐다. 집권 10년 남짓 온탕과 냉탕을 오간 남북관계를 직접 이끌었던 그는 전원회의에서 모든 책임을 한국과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으로 돌렸다.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의 말은 헌법이나 당 규약을 우선한다. 김 위원장 스스로가 이런 언급을 거둬들이지 않는다면 북한의 브레이크 없는 전쟁 분위기 조성 질주는 가속할 가능성이 크다. 당장 북한은 지난 5일부터 서해 접경지역에서 사흘 연속으로 대규모 포사격 훈련을 하고, 김 위원장은 “전쟁준비 강화의 대변혁”을 지시하며 말과 행동으로 긴장의 고삐를 죄고 있다.
김일성 떠올리게 하는 ‘영토평정’
북한은 김일성의 국토완정을 영토평정으로 단어를 바꾸며 전쟁 분위기 조성에 나섰다. 그리고 핵전쟁을 운운하며 무력행사 의지를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특히 주한미군 철수와 최근 미군 전략무기의 한반도 전개를 대표적인 적대 정책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김 주석과 흡사한 전략이다. 단, 침묵을 지키다 상대의 취약점을 찾아 뒤통수를 치는 빨치산 전술을 사용해 온 북한이 공개적으로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이 핵 개발에 따른 자신감인지, 명분 쌓기 차원인지는 불분명하다.
선택적 선대수령 유훈 받들기?
반면에 자신이 직접 나서 공공연히 전쟁을 언급하는 모습은 김일성·김정일 시대와는 확연한 차이다. 김일성은 전쟁에 실패한 뒤 국방에서의 자위라는 원칙을 내걸고 4대 군사노선(전군 현대화, 전민 무장화, 전군 간부화, 전국 요새화)을 독려하고, 청와대 기습·판문점 도끼 만행 등 도발을 이어갔다. 당시 북한 고위 인사들이 서울 불바다 등 전쟁을 언급하긴 했지만 최고지도자가 직접 나서지는 않았다. 오히려 주먹을 감춘 채 남북 대화를 추진하고, 통일방안을 선제적으로 내놓았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생전 마지막 서명한 문건을 사망 전날인 1994년 7월 7일에 살펴본 남북 최고위급회담(정상회담)과 관련한 문건이라고 선전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역시 핵과 미사일 개발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면서 2000년과 2007년 각각 김대중·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낮은 단계의 연방제 등 남북의 평화 통일과 화해·협력을 위한 합의문에 서명했다. 북한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유훈(遺訓)이다. 북한 『조선말대사전』은 유훈을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생전에 우리 일군들과 인민들에게 남기신 교시”로 정의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직후인 2012년 3월 판문점을 찾아 “우리 함께 수령님(김일성)과 장군님(김정일)의 필생의 염원을 기어이 실현하자”고 했다. 2018년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전방지역의 군사 충돌 가능성을 차단하겠다고 나선 것을 선대의 통일 유훈을 이행하려는 뜻으로 읽히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한국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공공연히 전쟁을 언급하는 건 본인 스스로 서명한 남북 합의에 대한 부정이다. ‘선대 수령’의 유훈을 어기는 것이기도 하다. 북한은 수령의 결정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령의 결정엔 오류가 없는 신성한 것이라는 게 전제다. 김 위원장이 5년도 되지 않아 본인의 약속을 뒤집고, 선대 수령의 유훈과 다른 길을 간다면 자신을 신처럼 ‘받드는’ 주민들은 그런 ‘최고 존엄’을 어떻게 생각할까.